"건강食 '산수유'로 유명해져 아플 수도 없어요"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광고가 인기를 끌며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더 큰 이유는 건강식품 경쟁력이 뛰어난 데다 소비자 직판 시스템을 통해 가격을 종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기 때문이죠."

산수유 CF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59 · 사진).서울 역삼동 천호식품 본사에서 최근 만난 그는 자신의 휴대폰부터 펼쳐 보였다. 배경화면엔 '중국 수출 대박,1500억원 매출 달성'이라는 내용이 떠 있었다. 2005년 이후 매년 20% 이상 매출이 늘어온 데다 김 회장이 직접 출연한 광고가 히트를 치면서 올 상반기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많은 600억원을 기록했다. 연말까지 1500억원 달성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계약 농가들이 재배한 고품질의 건강식품 원료를 제품화해 경쟁사들보다 싼값에 팔고 있는 게 지속적인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전국 직영 · 대리점은 3곳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제품을 본사에서 직접 팔고 있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300여명의 직원 중에서 콜센터에 소속된 판매직원만 200여명에 이른다.

"광고만 보고 제품이 산수유 등 몇 개밖에 안되는 걸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가 생산 · 판매하는 건강식품 종류가 160여가지나 됩니다. 제품을 한번 샀던 고객이 다시 주문하는 재구매율이 87.5%에 달하죠.홈페이지 하루 접속건수도 2만5000건이나 되고요. " '제품 경쟁력 강화→유통단계 최소화→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그의 사업 방식은 천호식품 경영 전반에 깔려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유명세를 타면서 불편한 점도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아플 수가 없어요. 내년이면 60세인데 아플 나이가 됐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건강식품을 많이 먹는 회장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봐요. 이게 적잖은 스트레스입니다. " 김 회장의 '즐거운 고민'은 이어졌다. 골프장에 가서도 드라이버샷 거리가 적게 나오면 '산수유 회장님이 왜 이래'라는 소리부터 나온다고 전했다.

기업 경영자로서 김 회장은 숱한 고비를 겪었다. 그는 1984년 부산에 천호식품을 세운 뒤 '달팽이엑기스'를 팔았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찜질방 황토방 등 문어발식 확장에 나섰다. 이게 화근이었다.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부산에서 현금보유 100위권 안에 들었던 그가 1998년엔 빚이 많기로 100등 안에 들었다.

당시 서울 서초동 9층 사무실에서 투신하려던 순간 세무서 직원이 세금을 내라고 전화로 독촉한 것이 그를 살렸다. 김 회장은 "그 전화를 받고 오기가 생겨 다시 일어서기로 결심했다"며 "아내가 선물했던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부산공장을 오가던 비행기 안에서도 승무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승객들에게 건강식품인 '강화사자밭쑥진액' 전단지를 돌렸다. "그렇게 해서 1년3개월 만에 은행빚 22억원을 다 갚았습니다. "

김 회장은 7년 전 개설한 인터넷 카페 '뚝심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의 카페지기로 활동하며 난관에 빠진 사람들에게 재기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2008년부터 특별강연 강사료,회사 출연금,자서전 인세 등으로 총 5억원의 '출산 장려기금'을 조성,세 자녀 이상을 낳은 그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20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110여명이 장려금을 받아갔다.

"앞으로 4~5년 내 회사를 상장시킬 예정입니다. 직원들에게 자사주 500만원어치씩만 사라고 했습니다. 억대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다짐했죠.이 약속을 지키는 게 제 꿈이기도 합니다. "

김 회장은 모든 일엔 시련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 때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업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성공하려고 나서야 합니다. "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