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피곤한데 오늘은 좀 집에서 쉬시라니까요. " "여보,미안하오.그래도 골프 약속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 외에는 절대 깨는 거 아니랍디다. " 10월 어느 토요일 아침.나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뿌리치고 집 밖을 나섰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클럽하우스에는 수많은 주말골퍼들이 하나같이 설레는 표정으로 티오프(tee-off)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엔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남녀노소 애호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스크린 골프와 매스컴이 골프 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한 탓일 게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이슬을 머금은 부드러운 잔디를 따라 걸으면 자연과 내가 그리고 골프공이 하나가 되는 순간임을 깨닫는다. 첫홀 티샷이 잘되면 그날 골프는 그럭저럭 '낫 배드(Not bad)'이다. 설령 티샷이 잘 안되더라도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다. 나름대로 안정적인 골퍼의 관록이랄까.

필자가 경험을 해보니 싱글골퍼가 되기 위해서는 8할이 노력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정된 볼을 쳐서 홀에 넣는 것이 뭐 그렇게 힘드냐 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클럽의 각도에 맞춰 볼을 정확히 보내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따라서 좋은 스코어를 내려면 기본기에 충실하며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격언이 있지만 골프가 얼마나 많은 연습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에 대한 농담이 유독 가슴에 와 닿는다. 골퍼가 100대를 치면 골프를 소홀히 하는 것이고,90대를 치는 사람은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이고,80대는 비즈니스를,70대는 골프 이외의 모든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평정심 유지도 필수적이다. 호주의 백전노장 골퍼인 그렉 노먼도 플레이를 잘못하고 있으면 생각이 복잡해지고 더욱 혼란스러워진다는데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그래서 내 경우는 또박또박 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홀마다 욕심 내지 않고 침착하게 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 욕심을 부리면 무리하게 힘이 들어가 자칫 미스 샷이 나기 십상이다.

골프는 정보 교류의 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함께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라운딩 동료와의 약속 그리고 매너가 중요시되는데,일단 라운딩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요,자기 차례에서 너무 시간을 끌거나 공을 건드리는 등의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 성실한 노력과 담대한 마음 그리고 약속을 중요시 여기는 태도,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골프코스를 라운딩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와 인생이다. 볼이 워터 해저드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고,소나무 숲으로 빠져 진땀 나는 샷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완벽한 골프는 없듯이,완벽한 인생도 없다. 다만 오늘을 감사하며 인생의 18홀을 마칠 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이동근 < 대한상의상근부회장 dglee@korcha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