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정상회의 대기실에서 다른 정상들과 환담하고 있던 간 나오토 일본 총리 앞으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다가서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간 총리는 악수를 청하고 선 채로 10분간 원 총리와 대화를 나눴다. 전날 정상회담이 무산된 뒤 대기실에서 비정상적인 회담이 열린 셈이다.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이후 중국과 일본 간 냉랭한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 내 반일 여론 등을 의식해 정상회담을 피한다. 지난 4일 브뤼셀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도 양국 정상은 만찬장 복도에서 선 채로 몇 마디를 나누는 데 그쳤다.

일본은 오는 11~12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와 13일 요코하마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중 · 일회담을 시도한다는 방침이지만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日언론 '中의 소인 외교' 비난

중국과 일본은 원래 29일 정상회담을 열기로 실무 합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중국은 회담 직전 갑자기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취소 이유는 두 가지였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센카쿠가 미 · 일 방위조약의 적용대상"이라고 한 발언과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의 교섭 재개에 일본과 중국이 합의했다"는 외국 통신사의 오보를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깨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중국의 소인(小人) 외교"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아사히신문은 31일자 조간 사설에서 중국이 정상회담 약속을 파기한 것은 "대국(大國)에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럽지 못한 외교"라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정상회담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반일 시위가 계속되고 공산당 내 뿌리 깊은 반일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일본에 약하게 보이는 모습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도 사설에서 "회담 거부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상대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고 지적했다.

◆美 "중 · 일 중재하겠다"

중 · 일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미국이 중재에 나설 뜻을 밝혔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3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일본과 중국의 갈등을 풀기 위한 미 · 중 · 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을 제의했다. 이 제안에 일본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양 외교부장은 즉답을 피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중국 하이난다오의 싼야(三亞)공항에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2시간30분간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미 · 중 관계는 물론 중 · 일 관계 개선 문제에 대한 언급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법은 나오지 않았다.

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발생한 다소의 트러블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에 견줘볼 때 결정적인 트러블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일 · 중 양국이 냉정하게 대처하면 경제 · 문화적인 면에서 더욱 더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결렬을 먼저 선언한 중국은 거친 표현으로 일본을 공격하고 있어 미국의 중재가 조기에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