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존재의 이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건,태광그룹의 쌍용화재 편법 인수의혹,C&그룹 비자금 사건 등 최근 터진 대형 사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사건이 불거지기 전 감독권을 행사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사실상 방치한 데다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해당 기업으로 대거 옮겨가 각종 의혹을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하다.

◆금감원 늑장 대응이 사태 키워

최근 잇따라 터진 신한금융 내분사태,태광그룹 및 C&그룹 사태에서 금감원은 '사건 조짐'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정황을 지난해 5월 신한은행 정기검사 때 포착했다. 하지만 1년 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실명제 의혹을 거듭 제기하자 지난 8월 마지못해 조사에 나섰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결코 묵인할 의도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금감원의 늑장대응이 신한금융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 금융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태광그룹이 보험 계열사를 이용해 각종 편법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금감원의 감독권은 유명무실했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동림관광개발이 강원도에 짓는 골프장의 회원권을 2008년 6월 22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 5년간 2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낸 흥국화재는 올해 8월 흥국생명보다 더 비싼 가격(312억원)에 이 골프장 회원권을 매입했다. 금감원은 작년 초 흥국생명과 흥국화재에 대해 정기검사를 벌였으나 계열사 간 거래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금감원은 최근 흥국화재에 대한 부문검사를 검토하고 있다.

C&그룹의 불법 대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작년 6월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실시하면서 C&그룹에 대한 불법 대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C&그룹에 대한 대출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았지만 앞서 감사원에서 파악하고 관련 직원 문책까지 마쳤기 때문에 추가 조치는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조사했더라도 금감원에서 조사하면 다른 내용들이 나오곤 한다"며 "추가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덮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자기 사람 심기에만 급급

금감원은 각종 사건에는 뒷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도 정작 소속 직원들을 금융회사로 보내는 데는 발빠르게 나선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최근 불미스런 사건이 터진 기업에는 모두 금감원 출신이 활동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상근감사는 금감원 국장 출신인 원모씨가 맡고 있다. 원씨는 신한은행이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검찰에 고소하기 전에 이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은행감독국의 권모 팀장은 2006년 1월 태광산업이 쌍용화재를 인수한 직후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생명 감사위원으로 옮겼다. 통상 부국장급 이상이 금융기관 감사위원으로 영입된다는 점에 비춰 팀장급이 감사로 간 것은 파격적이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전 금융감독원장인 A씨는 2008년 상반기 C&그룹 자문역으로 영입돼 도마에 올랐다.

이들뿐만 아니라 2006년부터 올해 8월 사이 퇴직한 금감원 2급 이상 88명 가운데 재취업 업체를 밝히지 않은 4명을 제외한 84명이 산하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중 82명이 해당 금융회사의 감사를 맡았다. 나머지 1명은 대표이사,1명은 상임고문으로 나갔다. 이러다보니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대부분 금융회사의 감사는 금감원 출신들이 맡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금융회사에 대한 낙하산식 재취업 통로로 전락해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라며 "이런 행태 때문에 금감원과 피검 금융회사 간 유착 의혹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균/이상은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