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쳤죠.하루는 남편이 '오늘은 내가 볼 테니 옆방에서 푹 자라'더군요. 한밤중에 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남편은 곯아떨어져 있었어요. 애를 달래느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죠.아침에 남편은 이러더군요. '어젯밤엔 얘가 한번도 안깨고 잘 잤어.'"

젊은 엄마의 하소연이다. 이렇다. 옆에 있는 아기가 큰 소리로 울어도 모르고 자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다른 방에서 자다가도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깬다. 미혼 시절 아기 기저귀 가는 것만 봐도 냄새 난다며 고개를 돌리던 여성도 엄마가 되고 나면 싹 달라진다.

똥오줌 기저귀를 척척 가는 건 물론 같은 울음이라도 소리와 정도에 따라 배가 고픈 건지,기저귀가 축축해서 그러는지,어디가 아픈 건지 죄다 안다. 어떻게 안아야 더 편안해 하는지,어떤 색이나 빛에 반응하는지,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잘 먹는 것과 가리는 게 뭔지 아는 것도 물론이다.

아기에 관한한 작은 이상도 금세 눈치 챈다. 또 옹알이만 시작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 웅얼거림을 엄마는 알아듣고 대꾸하고 조치한다. 아빠는 엄마라는 통역사가 있어야 아기와 대화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거저 되는 게 아니라 출산과 양육이 뇌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기를 낳고 키우노라면 기억과 정보 처리는 물론 인지 · 추론 · 감정 등을 관장하는 뇌의 회백질(대뇌 겉부분) 용적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 의대 김필영 박사가 출산 후 2~3주 후와 3~4개월 후 산모의 뇌를 관찰했더니 출산 후 몇달 동안 에스트로겐,옥시토신 같은 특정 호르몬 분비량이 변하면서 양육 관련 기능과 관련있는 뇌 속 회백질이 늘어나더란 보고다.

만성요통과 불면증이 회백질을 줄인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성인의 경우 몇달 새 회백질 용적이 느는 일은 없다고 돼 있다. 출산과 양육 중 어느 쪽 역할이 더 큰 지 알 길 없지만 변화가 출산 후 일어난다는 걸로 봐 육아의 몫이 더 커 보인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힘은 세심함과 귀 기울임이고 이는 소통의 가장 큰 특성이다. 육아는 엄마 몫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빠도 적극 참여하면 남성의 뇌 속 회백질도 증가할 테고 그렇게 되면 부부끼리는 물론 사회구성원 간 소통도 좀더 원활해질지 모른다. 육아 부담이 줄면 여성들의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질 것도 틀림없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