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부자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딸의 배필을 구했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 부자는 두 사람을 골랐다.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든 부자는 어느 누구를 선택하기가 어려워 두 사람을 데리고 이태리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태리의 어느 지방을 여행 중에 부자가 절벽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떨어지면서 간신히 나무를 붙잡아 목숨은 건졌으나 혼자서는 올라올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같이 죽을 수 없다며 도움을 거절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 부자를 구해주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부자는 딸의 사위로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아닌, 도움을 거절한 사람을 사위로 삼았다. 그리고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일정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구해준 남자가 생명의 은인으로서 당연히 사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자는 그 반대의 결정을 했다. 어찌 생각하면 은혜에 대한 배신을 한 것이다.

부자는 은혜를 입음으로서 원하든 원하지 않던 빚이 생겼다. 하지만 부자는 생명의 은인을 사위로 맞이하여 평생 그 빚을 안고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재산을 주는 것으로 그 빚을 정리한 것이다. 사위로 삼은 사람에게는 그런 빚이 없으니 장인과 사위로서 정상적인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신의 진실이다.

기업도 사람처럼 배신의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동종기업 간에 서로 합의하에 담합행위하고도 먼저 자수하면 막대한 과징금을 피하는 제도가 있다. 처벌받는 기업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유혹적일 것이다. 단속하는 입장에서는 배신을 유도하는 이 제도가 유용하겠지만, 먼저 자진 신고한 기업은 배신했다하여 업계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대기업은 이 제도를 곧잘 악용하기도 한다. 경쟁기업에 재정적 타격을 주고 자신은 빠지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배신의 진실이다.

공무원인 한 지인은 인사이동으로 그렇게 원하던 고위직으로 승진을 하게 되자, 오랫동안 필자와 서슴없이 얘기한 자신의 사생활이 부담되어 처음 만날 때와는 달리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때부턴가 연락이 끊어졌다. 상대방이 자신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불편해 지면, 어느 순간 관계를 부정하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분과의 이별이 매우 섭섭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관계 내면의 진심인 것이다. 또 다른 배신의 진실인 것이다.
처음부터 악의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쉽게 하는 사람은 없다. 배신을 결심할 때는 나름대로 고민과 갈등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럴 필요성에 강한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과징금이든 생명의 은인이든 스스로 감수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사람은 정상적이든 아니면 비정상적이든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발목이 잡혀 운신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이 들면, 배신이라도 해서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사람의 내면(內面)을 보면 겉으로 보여 지는 것과 다른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배신을 하는 그 진실 된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행복해 지고 싶은 것, 단지 그것 하나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자유롭고 행복 하고 싶은 것이 공통된 마음이다. 처음부터 배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배신은 어찌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최후의 선택이더라도 남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주는 그런 배신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절한 보상이 있는 영국 부자의 배신이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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