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경제학자 아민 포크는 규모가 큰 국제 자선단체와 일하면서 세 가지 유형의 기금조성 방법을 마련했다. 스위스 취리히 시민들에게 보내는 각각의 프로그램에는 모두 방글라데시 부랑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을 위해 기부를 해달라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약 1만장의 요청서 중 3분의 2에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이 그린 소박한 엽서가 들어 있었고,나머지 3분의 1에는 그런 선물이 없었다.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은 둘로 나눴다. 일부 편지에는 엽서 하나만 동봉하고,다른 편지에는 엽서 네 장을 넣었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선물을 받지 않았는데도 기부를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선물을 받은 후에야 돈을 기부했다. 선물이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의 기부 비율은 각각 14%와 17%였다. 놀라운 것은 엽서 네 장을 동봉한 경우였다. 기부 비율이 75%에 달했던 것이다.

이 자선단체가 엽서를 만드는 데 들인 비용은 2000프랑,총 기부금은 9만2656프랑으로 선물을 활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약 22%(1만380프랑) 늘었다. 포크는 이 자선단체가 4800프랑을 지출해서 더 많은 선물(엽서 네 장)을 보냈다면 4만976프랑의 추가 기부를 이끌어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머니랩,돈이 벌리는 경제실험실》은 이처럼 돈이 움직이는 방식을 통해 실험경제학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실험경제학은 행동경제학 중에서도 최첨단으로 꼽히는 영역으로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심리와 그 과정,돈을 둘러싼 거래와 계약,협상 등의 상황에서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기 위해 현실과 거의 유사한 실험환경에서 데이터를 도출한다. 책 제목의 '머니랩'은 '돈(money)+실험실(laboratory)'을 줄인 말이다.

실험경제학의 연구 결과들은 돈을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인식돼온 상식을 깨뜨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은 컴퓨터나 기계처럼 이익과 결과라는 잣대로 정밀하게 상황을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그런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어떻게 사람들을 조종하고 제어할 것인지 알려준다.

1만5000원보다 1만5490원이 더 싸게 느껴지는 이유,똑똑한 사람이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는 원리,특별 상여금을 주면 직원들의 사기가 오히려 떨어지는 까닭,메뉴가 많은 집에 손님이 몰리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다.

가령 1만5000원보다 1만5490원을 더 싸게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뒷자리가 큰 숫자들은 반올림해서 부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뒷자리가 복잡한 숫자를 더 작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숫자 정밀성 효과'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이 이를 입증한다. 실제로 부동산 구매자들은 마지막에 0이 하나만 붙은 매물에 더 많은 값을 치르면서도 더 싸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DVD를 며칠 늦게 반납할 경우 부과되는 연체료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경제학자 피터 피쉬먼과 데빈 포프가 비디오 대여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 고객들은 연체료에 대해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연체료를 낸 고객 중 27%는 그 가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연체료 대신 대여기간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하면 불만을 표시하는 고객은 거의 없다. 그 같은 조치가 공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공한 비디오 대여회사 넥플릭스의 리 해스팅스 대표는 40달러에 달하는 연체료를 낸 걸 계기로 이 회사를 창업,'연체료 없음'을 내세웠다.

저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공정함과 형평성,상호주의 또는 호혜주의,합리성과 평판,신뢰,게임의 법칙 등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날씨가 맑고 햇볕이 많은 미국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인 빅토리아 관광업체들은 비수기 관광객 유치를 위해 "2박 이상 머무는 고객에게 여행 중 1.25㎝ 비가 오면 500달러를 환불하겠다"고 보증했다. 이 '일광(日光) 보증' 판촉으로 이 도시는 많은 여행객을 유치했고,날씨보험에 가입해 위험을 해소했다.

학위,실적,사회적 명성 같은 평판은 거래관계 유지의 중요한 판단 근거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케이윳 HP연구소장은 다양한 거래 실험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거래 상대방과 충분한 평판을 쌓았던 사람이라도 마지막 거래에서는 돈만 챙겨 달아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했다. 열심히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대학 원서를 낸 후에는 태만해지는 '상급생 슬럼프'처럼 '마지막 거래효과'라는 게 있다는 얘기다.

또 아방가르드 디자인으로 1950년대 고급 패션계를 풍미했던 피에르 가르댕이 기성복 컬렉션에 이어 알람시계,야구공,담배 등 무려 800여개 제품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다 실패한 것은 평판을 남용해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평판의 덫'의 사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