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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희 칼럼] 군화와 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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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궂은 일 피해온 해바라기 엘리트, 신발 바꿔신고 낮은 데로 나서야
    # 국방부는 군화건조기 2750대 구매 예산을 내년도 국방예산안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비나 눈이 올 때 경계 근무를 서는 장병들의 발 건강을 위해 군화건조기를 보급한다"며 "장병들의 근무 여건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신형 전투화에 물이 새는 문제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바닥창에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바닥창으로 만든 신형 전투화는 이미 전군에 40여만켤레 보급돼 있다. 현재 전군에서는 뒷굽이 떨어질까 봐 신형 전투화에 나사를 박아넣고 있다. 특히 열에 약한 탓에 군화건조기도 사실상 쓸모 없게 됐다.

    앞의 것은 9월28일 통신,뒤의 것은 다음 날 방송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다. 두 기사를 보면서 문득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이의 고백이 생각났다. "입대 후 툭하면 군화를 신고 잤다. 끈을 빨리 매지 못해 한밤중 갑작스런 집합에 늦을까 걱정돼서였다. 눈비 올 땐 물론 맑은 날도 저녁이면 군화 속 양말까지 젖었지만 벗어서 말릴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

    그는 그때 걸린 무좀 때문에 제대 후에도 오래 고생했다고 말했다. 30여년 전 일인데 보도를 보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러니 밥술이나 먹는다는 집 아들이 군대에 가면 "너네 엄마 계모냐"고 묻는다는 말이 떠돌 수밖에.

    지금이 어느 땐데 군화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는 건지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눈비 쏟아지는 날 밖에서 보초 서고,한여름 뙤약볕 아래 완전군장한 채 뛰고 나면 발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여태 그 지경으로 나뒀을 리 없다 싶은 까닭이다. 한번이라도 신어봤으면 군화야말로 얼마나 잘 만들어야 하는지 절감했을 게 틀림없다.

    고단한 일상을 대변하는 건 장화도 다르지 않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에 나오는 분홍색 장화는 대표적이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이 배경인 영화의 여주인공은 숙청 대상인 지식인 가정의 맏딸.아버지는 끌려가고 어머니는 교사였던 학교의 청소부로 일한다. 어떻게든 졸업 후 일자리를 얻어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그는 학교 측에 잘 보이기 위해 운동장 공사 인부를 자청한다. 맨발로 시멘트를 밟는 그를 지켜보던 연인은 장화를 사준다.

    2007년 태안 해안가를 뒤덮은 검은 기름을 걷어낼 때도,헝가리 데베체르 마을을 뒤덮은 붉은색 독성 슬러지를 치울 때도 장화는 필수품이다. 도시에선 신을 일이 거의 없지만 농어촌이나 단체급식소 주방 같은 작업장에선 꼭 필요한 도구다. 강이나 바다에서 일하자면 기다란 가슴장화를 착용해야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엔 "지미추 구두를 선택하는 순간 너는 영혼을 판 거야"란 대사가 나오거니와 신발은 신는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 군화를 신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겨울에 젖은 군화 속 언 발을 녹이지도 못한 채 신고 잤던 이의 심정을 알 리 없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30분 비에 물바다가 된 길에 선 사람의 기막힘을 모르고,장화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진창에 발이 빠질 때의 무거움을 짐작하지 못한다.

    군화도 장화도 신어보지 않고,종일 서 있는 유통업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발이 얼마나 붓는지 모르는 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세우는 일자리 대책이나 서민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군대도 안 가고 일찌감치 '갑'이 돼 궂은 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해바라기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지금도 늦지 않다.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엘리트로 남고 싶다면 자신의 성공이 남보다 좋은 머리,피나는 노력의 성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신발 바꿔신고 낮은 데로 내려서야 한다. 가난보다 무서운 건 가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꿈을 잃은 나머지 일해도 소용없다는 식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이 땅의 미래는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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