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쓰고 남은 사업비를 임직원들이 나눠 갖는가 하면, 규정에도 없는 휴가를 만들어 보상비를 푸는 실정이다. 여기에 경영사정이 나쁜데도 퇴직금을 더 주고 직원들에게 수백만원짜리 복지카드를 뿌려대는 등 그 사례들을 일일이 손꼽기도 힘들다. 기가 막히고 개탄스런 일이다.

농어촌공사는 지난해 남은 사업비 60억8000만원을 연말 상여금 등으로 부당 사용했으면서도 경영보고서에서 누락시켰다. 한국전력과 계열사들은 퇴직금으로 268억원을 과다지급하고 규정에 없는 휴가보상금을 106억원 썼다. 이들의 '낙하산 인사'도 여전하다. 도로공사는 법적 근거도 없이 자회사를 만들고 자사 출신 임직원을 9개 출자회사의 임원진으로 앉혔다.

기관의 성격은 다르지만 금융감독원의 경우 2006년부터 올 8월 사이에 퇴직한 고위직급 88명 가운데 84명이 금융회사에 재취업한 것도 모럴해저드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82명이 모두 감사로 들어갔고 상당수는 퇴직한 다음 날 바로 새 직장으로 출근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 윤리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미리 '보직세탁'을 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고도 한다.

공공기관들의 모럴해저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도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다양한 편법이 동원되고 몰염치한 행태가 늘어난다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선진화가 겉돌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의 최고경영자(CEO)들조차 경영정상화에 대한 사명감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저께 국감에서 도로공사 사장이 매년 수조원씩 불어나는 부채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의에 "다음 세대에 넘기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던 것에서 그런 인식의 안이함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한 감독과 경영평가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부채가 작년 말현재 347조원을 넘는 만큼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모럴해저드를 근절하도록 관련부문에 대한 평점을 높여 CEO들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