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수주는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박기석 삼성엔지니어링 사장(56)이 마케팅 본부장(부사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말의 일이다. 한 임원이 회의 도중 '전략적 수주'라는 말을 꺼냈다. 중동에서 수주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가격을 조금 낮춰서라도 일단 계약을 맺고 보자는 얘기였다. 곧바로 박 부사장이 끼어들었다. "전략적 수주요? 덤핑 수주하자는 것 아닙니까?수주할 때부터 적자를 보자는 겁니까? 앞으로 내 앞에서 전략적 수주 얘기 꺼내면 혼쭐이 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후 임원 회의에서 전략적 수주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괴짜

박 사장은 학창시절 공부에는 큰 취미가 없었다. 의사가 많은 집안으로 부모님도 의대에 가라며 공부를 독려했지만 공부보다는 기계체조 · 스피드 스케이팅 등에 더 빠져 지냈다. 나중에 의대로 옮기겠다는 생각에 경희대 공대에 입학했다.

대신 다른 인생살이에 관심이 많았다. 신촌 카페에서 디스크 자키도 했다. 어릴 적 별명은 '면도날'이었다. 뭐든 따지는 성격 때문이다. 어떤 일을 맡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독서도 그중 하나다. 학교 공부는 등한시했지만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무협지부터 생물학 서적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가 요즘 엔지니어링 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으면서도 인공지능,나노볼(나노입자)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어릴 때부터 생긴 독서 습관과 무관치 않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엄청납니다. 특히 생물학적 진화보다 기계적 진화가 더 빨라졌죠.인간 두뇌에 버금가는 컴퓨터 인공지능이 나오면 그야말로 지식의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겁니다. 그때는 엔지니어링을 포함한 우리 사업이 어떻게 될까요. 하여튼 이런 책을 화장실에서 너무 많이 봐서 탈장 증상을 보이기 직전입니다. (웃음)"아이 때나 지금이나 박 사장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괴짜다.

◆소방수가 된 신입사원

박 사장은 1979년 삼성그룹에 입사,현 삼성엔지니어링의 전신인 코리아엔지니어링에서 일했다. 입사 초기 그에게 회사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관심을 기울여 준 선배도 없었다. 그래서 박 사장은 회사 일을 배우기 위해 학생 때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입사 몇 달 후엔 아예 회사에 야전침대까지 갖다 놨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서다. 상사들은 야전침대까지 놓고 회사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당시 신입사원이던 박 사장은 담담하게 답했다.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 그럽니다. "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부장 · 과장들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박 사장만 찾기 시작했다. 일이 터질 때마다 그가 손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6년 과장을 달기 전까지 박 사장의 별명은 '소방수'였다.

1993년 박 사장의 직장생활에 큰 변화가 왔다. 갑자기 그룹 비서실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방침을 각 계열사에 전파하고 성과를 높이기 위해 그룹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박 사장이 발탁된 것이다. 하지만 박 사장에겐 시련기였다.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3년간 보고 배운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야단도 많이 맞았죠.그래서 밤마다 회사 서류를 보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당시 이 회장의 말을 녹취해 녹음기로 반복해 듣던 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

1996년 비서실 임원이 당시 부장이던 박 사장을 불렀다.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희망 회사를 물었다. 박 사장의 답은 의외였다. 전자나 물산,생명 등 인기 있는 핵심 계열사 대신 자신의 본향격인 삼성엔지니어링을 택한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에서 방콕지점장,해외영업팀 이사,화공사업본부장(상무) 등을 거쳐 지난해 초 마케팅본부장(부사장)에 올랐다.

◆CEO로부터 CEO를 배우다

박 사장의 지난해 해외 출장 일수는 120일.이 중 작년 마지막 출장 출발일이던 12월14일을 잊지 못한다.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다. 박 사장은 당시 미국 휴스턴 출장을 위해 비행기 탑승을 준비 중이었다. 삼성엔지니어링 창사 이후 처음으로 회사 내부에서 선임된 실무형 CEO여서 감회는 더 남달랐다.

"수십년간 플랜트 건설과 마케팅을 담당해 왔습니다. 밑바닥부터 다진 셈이죠.현장형 · 실무형 CEO로서 시험대에 오른 것 같아 벅차면서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출장을 마치고 온 후 곧바로 부친 묘소를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CEO에 꼭 오르겠다는 두 가지 약속을 했었거든요. 2008년 훈장을 받았으니 이제 약속은 다 지킨 셈입니다. "

박 사장은 CEO로서의 역할을 전임 대표이사인 정연주 사장(현 삼성물산 사장)으로부터 배웠다. 임원으로서 7년 동안 정 사장을 보좌하면서다.

"정 사장을 모시면서 제가 부족했던 중 · 장기적 안목 등 많은 장점을 흡수했습니다. 7년 동안 경영대학원에서도 다 배우지 못할 경영기법을 바로 옆에서 과외를 받은 셈이죠.그 기간 동안 실무 경험을 경영에 녹여낼 수 있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

◆"수주 대박이 뭔지 보여주겠다"

그동안 삼성엔지니어링은 사업 규모도 작고 성과도 크지 않아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계열사였다. 박 사장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임직원들은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게 됐죠.지금도 그 정신 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가 살기 위해 뜨거운 중동 사막을 누비고 있는 이유입니다. "

박 사장은 특히 회사 내부 인력을 가장 큰 무기로 꼽고 있다. 팽창하는 세계 엔지니어링 시장을 잡기 위해선 뛰어난 인재밖에 답이 없다고 보고 있다. 다른 국내 플랜트 업체들이 연간 50~100명씩 인력을 충원할 때 박 사장은 500명씩 신입사원을 뽑아 키웠다. 2005년 1700여명이던 삼성엔지니어링 인력이 올해는 5600명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이 많아지니까 인력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특히 고급 인력이 핵심입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나가도 당장 CEO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후배만 회사에 4~5명 정도 있다고 봅니다. "

박 사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80억달러의 해외 수주를 일궈냈던 화공플랜트 외에 발전,담수플랜트,철강설비 등 비화공 분야에서도 글로벌 강자에 오르겠다는 목표다. "2015년이면 우리의 꿈이 이뤄질 겁니다. 비화공 플랜트 분야를 늘려 연간 수주 300억달러 달성이라는 중 · 장기 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때쯤이면 미국 벡텔이나 플로어 같은 세계적 엔지니어링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면 진정한 글로벌 일괄 사업수행(EPC) 업체라고 할 수 있겠죠."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