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유통 대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중소 상인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화끈하게 유통 대기업들을 규제하지 않는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특히 야당은 정부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 법안 처리와 관련,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국정감사를 통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여당 의원들까지 "SSM 직영점이건 SSM 가맹점이건 구멍가게를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유통산업발전법과 대 · 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대기업 때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시대조류에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질 정도다.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발전'법 개정안에 생산성이 높은 대형 소매점의 입지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산업발전=대형소매점 출점규제'란 등식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지금 같은 규제 분위기가 수십년간 이어지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1970년대 초 대 · 중소기업 간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유통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1973년 '상업 및 수공업 방향설정에 관한 법률'(일명 르와이에 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인구 4만명 이상 도시는 면적 1500㎡ 이상,4만명 미만 도시는 1000㎡ 이상 점포를 설립할 때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1996년에는 이 법을 더욱 강화,인구 규모에 관계없이 300㎡ 이상 되는 모든 점포를 규제 대상으로 했다.

르와이에법이 발효된 이후 프랑스 유통시장은 급변했다. 우선 신규 출점이 묶인 대기업들이 중소 소매상들을 대거 흡수,합병해 집중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대기업 중심으로 유통시장이 재편된 것이다. 두 번째는 유통 대기업의 해외진출.까르푸를 비롯한 유통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5만여명의 고용 기회가 상실됐다. 세 번째는 업태(業態) 다각화.가전,완구,양복 등 한 가지 품목을 깊이있게 취급하는 전문점 시대가 본격 열렸다.

일본도 1973년 '대규모 소매점포법'이 제정되면서 대형점 규제가 시작됐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1960년대 후반부터 중소상인들은 대형 양판점이 새로 생길 때마다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쳤다. 양판점 업체인 이토요카도 임원으로 출점 교섭 담당이었던 스즈키 도시후미는 지역 소매상 대표 등과 13~17개월간 벌인 조정 협상에 넌더리가 났다. 결국 그는 당시로선 획기적 업태였던 미국 사우스랜드사의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도입해 난관을 뚫었다. 회사 내의 강력한 도입 반대에 부딪치자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자본금 1억엔의 사내 벤처회사를 설립,세븐일레븐을 세계 최대 체인점으로 키웠다. 그는 현재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있다.

롯데 · 신세계 · 현대백화점 등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규제 강풍에 맞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외국 기업이나 다름없는 홈플러스처럼 저돌적으로 SSM을 밀어붙이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돌파구는 새 업태와 해외시장이다. 유통 대기업들이 복합쇼핑몰 개발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중국,동남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결국 대형점 규제는 중소상인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대기업에 소비자들을 몰아주고 고용 기회를 잃게 할 가능성이 크다. 2001년 셔틀버스 운행 금지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타산지석이란 고사성어가 가슴 깊이 와닿는 정치의 계절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경제학 박사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