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트라노이(tranoi) 전시회장.7일까지 열린 파리 패션위크 행사에 맞춰 이곳에 차려진 300여개 부스 가운데 해외 바이어들로 가장 북적인 곳은 '쟈뎅 드 슈에뜨'였다.

국내 디자이너 김재현씨가 선보인 화려한 프린트 여성복 브랜드가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벨기에 셀렉트숍(대중화하지 않은 브랜드를 판매하는 매장)의 한 바이어는 "부엉이 패턴의 노란색 롱드레스가 눈길을 끌어 들어왔다"며 "개성있는 프린트들이 마음에 들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트라노이에는 처음 참가하는데 벨기에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 바이어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번에 계약을 여러 건 성사시켰다"고 전했다.

김재현 이승희 임선옥 이석태 최지형 주효순 홍혜진 등 7명의 국내 디자이너들이 처음으로 트라노이 무대에 진출했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참가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서울시에서 추진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이들은 이번에 7개의 부스를 마련했다.

해외 바이어들은 이들 브랜드에 대해 '신선한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별도의 한국관이 아니라 다른 브랜드들 사이에 끼어 있었지만,유독 한국 브랜드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 바이어들이 많았다.

파리 현지의 PK패션컨설팅 관계자는 "실력있는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유럽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이곳을 찾는 바이어들은 까다롭고 의심이 많기로 유명한데 처음 접하는 브랜드를 이렇게 사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론칭한 독립 브랜드 '르이'로 부스를 차린 이승희 디자이너는 "이곳 바이어들은 브랜드 국적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며 "옷 한 벌이 100만원 선으로 다른 브랜드들보다 비싼 편인데도 디자인과 품질을 보고 선뜻 주문했다"고 말했다. '칼 이석태'의 이석태 디자이너는 "브랜드 성격이 강한 편인데 유럽 바이어들이 이 점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며 "미국과 영국 바이어들의 상담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의 일차적 목적은 옷을 파는 것이지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바이어 리스트를 확보하고,브랜드 인지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소비자 성향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쟈니 헤이츠 재즈' 브랜드를 내세운 최지형 디자이너는 "아시아 쪽에서는 무난한 디자인들이 먹혔는데 유럽 쪽은 과감한 디자인과 특징있는 제품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며 "다음 시즌 유럽 쪽 바이어를 겨냥해 어떤 제품을 디자인할지 머릿속에 구상해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번 나흘간의 전시 기간에 이들의 수주 물량은 약 30만유로에 달했다. 가장 성과가 좋았던 디자이너는 김재현 · 이석태씨로 각각 5만유로를 넘었다. 이들은 교환한 명함을 통해 30%가량의 추가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내다봤다.

미셸 하디다 트라노이 대표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는 얼마나 개성있고 신선한 디자인으로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느냐가 중요할 뿐"이라며 "이번에 참가한 한국 디자이너들은 유럽 소비자를 파고들 수 있을 만큼 각자의 아이덴티티와 고품질의 제품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파리=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 트라노이 전시회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열리는 패션 트레이드 쇼.신진 디자이너들이 코엑스 박람회처럼 쇼룸 부스를 마련해 놓고,바이어들이 샘플을 보고 발주하는 패션 전시회다. 전 세계 유명 백화점과 멀티숍,편집숍 등의 바이어 8500여명이 방문하기 때문에 이들과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이뤄질 수 있어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해외 진출을 위한 '꿈의 무대'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