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성(城)과 대학이 먼저 떠오르는 곳.고풍스런 강변에서 황태자가 하녀와 첫사랑을 나누고 62세의 괴테가 30세 유부녀 마리안네의 연인이 될 만큼 마력을 지닌 곳.600년 된 대학에 300년 된 학사주점과 노벨상 수상자를 17명이나 배출한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있고 막스 베버가 수많은 지성인들을 불러들여 난상토론을 하던 곳.독일과 전 세계의 '지식 중심지'이자 영원한 '청춘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다.

시골은 신이 만들고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다지만 하이델베르크는 도시 안에 자연이 있고,자연 안에 도시가 있는 곳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곳,영혼의 자유로움 속에서 낭만이 싹트고 학문과 사상이 깊어져 마침내 하이델베르크 신화와 정신이 탄생한 것이다.

이 책 《정신의 공화국 하이델베르크》를 좀더 들여다보자.하이델베르크역 현판에 쓰여진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중세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하이델베르크의 정체성은 바로 끊임없는 정신적 · 질적 가치의 추구였다. 이 정체성은 현대에 의해 과거가 파괴되고 양적 팽창만을 거듭해 온 한국 사회엔 구원의 메시지인 동시에 경종과도 같다.

먼저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독일의 도시들은 어떤가. 아인슈타인의 양자역학이 탄생한 괴팅겐은 인구 12만명 규모다. 수많은 시인과 과학자를 배출한 대학과 세계적인 광학업체가 있는 예나도 인구 10만명이 겨우 넘을 뿐이고 로볼트라는 세계적인 출판사가 있는 라인벡은 인구 2만6000명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유서 깊은 문화재와 극장,도서관과 대학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정치 · 경제 · 문화의 기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다. 그야말로 전 국토가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이자 주인공인 것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이런 도시들의 전형일 뿐 도시 하나하나가 이처럼 다양성과 '나눔의 미학'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1386년에 개강한 하이델베르크대의 정식 명칭은 루프레히트카를대다. 하이델베르크대는 독일 최고(最古)의 대학이지만 그렇다고 최고(最高)의 대학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독일의 대학에는 서열이 없으며 지역 제후들의 뒷받침 속에서 저마다 독특한 학풍과 전통을 자랑하고 학생들은 얼마든지 대학을 옮기며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중세시대의 대학은 도시 안에서 독자적인 사법권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학생감옥이다. 대학이 중앙의 통제 없이 자체적으로 질서를 지키면서 유럽의 정신과 문화를 이끌어 온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또 다른 매력은 고성(古城)이다. 17세기에 세워졌다가 팔츠 상속전쟁 와중에 파괴됐지만 역설적으로 폐허미를 불러일으켜 숱한 낭만주의자들과 묵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복원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지만 폐허상태가 자연과 결합해 미학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함으로써 문화적 명소가 되었다. 우리 같았으면 어땠을까. 복원을 위해 원형 훼손을 마다않는 문화재 보존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여행자라면 하이델베르크를 관통하는 네카어강의 카를 테오도어 다리를 걷게 될 것이다. 매혹적인 풍광 때문에 이곳에선 누구나 발걸음이 느려진다. 2차대전 때 파괴된 이 다리를 시민이 먼저 재건했다고 한다. 삶 속에 깃들어진 문화,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이 다리를 귀하게 여겼으리라.

저자는 하이델베르크라는 이 작은 도시에 '정신의 공화국'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유럽의 모든 도시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하지만 하이델베르크야말로 '항상 열려 있고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다. 동시에 하이델베르크를 통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고,한국인의 눈으로 하이델베르크를 객관적으로 살펴 본 것은 유럽 문화사 측면에서도 값진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