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킨스는 '경제 저격수'였다. 경제 저격수의 임무는 세계 전역의 개도국을 찾아가 정 · 재계 거물들을 배후 조종해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기업들이 탐내는 자원을 많이 보유한 나라들이 주된 타깃이 된다.

경제 저격수들은 개발을 위해서는 자원을 민영화하고 외국 투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미국 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원개발권을 넘기도록 설득한다. 자원개발로 자연환경이 오염되고,원주민의 삶의 터전이 파괴된다. 그들은 또 개발을 위해 막대한 차관 도입을 유도한다. 그 차관은 대부분 인프라를 건설하는 미국 기업들에 지불된다. 경제 여건이 나빠져서 차관 상환이 어려워지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앞세우고 들어와 가혹한 구조조정과 민영화 등을 강요해 미국 기업들이 헐값에 자산을 인수한다.

경제 저격수의 활동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사가 먼저 원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무장 해제시킨 후 경제적 침탈을 본격화했던 것과 흡사하다. 경제 저격수들은 성경 대신 자유시장 이론과 장밋빛 개발의 환상으로 개도국 실력자들의 혼을 빼놓는다. 그들에게 개인적 치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설득과 뇌물이 통하지 않을 땐 '자칼'이라는 제국의 용병이 CIA를 등에 업고 지도자 암살과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 이런 일들은 이란,과테말라,인도네시아,칠레,파나마,에콰도르 등 수많은 나라에서 벌어졌다. 이라크 침공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유시장을 앞세운 약탈과 파괴(이를 퍼킨스는 '약탈 자본주의'라고 부른다)는 제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화한 미국의 어두운 모습이다. 만행의 근본 원인에 관해 퍼킨스는 막대한 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좌지우지하는 기업 정치를 지목한다.

성공적인 경제 저격수로서 제임스 본드와 같은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퍼킨스는 가까웠던 개도국 지도자들의 의문사를 지켜보며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생활을 청산한다. 협박과 뇌물 공세로 폭로를 미루던 그는 2004년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후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대중을 일깨우고 있다.

이번에 나온 《경제 저격수의 고백2》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한 그의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세계 금융 위기의 원인을 약탈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개도국에서 약탈 자본주의로 재미를 본 기업 정치의 주역들이 이 모델을 국내에도 적용시킨 결과 파멸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퍼킨스는 책의 제2부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는 건강한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변화를 위한 행동이다. 변화는 결코 위에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변화는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변화를 위한 행동의 출발점은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는 약탈 자본주의 사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소비자로서,투표자로서 선택하는 일부터 시민단체 활동이나 대안경제 참여 등 할 일은 많다. 퍼킨스의 열정으로부터 새로운 각성을 얻으시기를 권한다.

유종일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