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국회 의원회관 707호실에서 만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약간 초조해 보였다. 7 · 14 전당대회에서 안상수 대표에게 석패한 뒤 서민대책특별위원회를 맡고 있었지만 이렇다하게 보여줄 만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홍 최고위원은 "고충이 많으시겠다"는 기자의 말에 "이런 거는 어떨까 하는데…"하면서 은행법 개정 문제를 조심스레 꺼냈다. 지난 4일 은행들이 '새희망홀씨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내달부터 내놓기로 한 바로 그 상품이다.

그는 "우리나라 은행들이 외환위기 때 공적 자금을 그렇게 받고 여태까지 서민들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분개했다. 한 참모는 "아주 나쁜 XX"이라고까지 했다. 홍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공정사회는 말로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사고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은행법을 바꿔 은행들이 전년도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들에게 무담보로 내놓토록 하는 안을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홍 최고위원도 '혁명'을 거론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얘기로 들렸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범례 의원조차도 쩝쩝 입맛만 다실 뿐 이렇다 할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서민대책특위에서 다른 친서민 대책을 발표할 때도 이 방안은 당내 반발 때문에 공론화조차 되지 못했다.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신동규 전국은행연합회장이 지난주 홍 최고위원을 찾아가 자발적으로 이를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래서 더 뜻밖이었다. 홍 최고위원은 "거봐라.내가 누구냐"고 했다. 그런 자신감의 배경은 간단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 최소 150명을 설득해 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은행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러나 새희망홀씨 대출 상품이 오래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홍 최고위원은 "일단 은행들이 하기로 했으니 이제 어떻게 하는지는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고 했다. 한방의 '홈런'으로 그의 분노와 초조는 사그라진 것처럼 보였다. 은행들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한 금융권 인사는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공정사회 바람,분노의 바람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려야지."

박수진 정치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