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하락 초비상] 수출기업 "환율 얼마나 더 떨어질까"…주문 받아놓고 마음 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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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채산성 '빨간불'
中 현지공장 가동 기업들 위안화 절상 겹쳐 '이중고'
환율 예상보다 가파른 하락 "내년 경영계획 눈감고 짤 판"
中 현지공장 가동 기업들 위안화 절상 겹쳐 '이중고'
환율 예상보다 가파른 하락 "내년 경영계획 눈감고 짤 판"
환율 덕을 톡톡히 봤던 국내 기업들의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원 · 달러 환율이 급락세에 접어들면서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환율이 아직 버티지 못할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추가 급락이 이어지면 수출 전략뿐만 아니라 내년 사업계획 자체를 조정해야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수출기업 '비상'
자동차업계는 환율 하락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지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생산 물량의 75~80%가량을 수출하고 있는 현대 · 기아자동차는 원 · 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매출이 2000억원가량 줄어드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환율이 연초에 잡았던 사업계획상 기준환율인 1100원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며 "환율이 더 떨어지면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격적 마케팅 기조는 유지하기로 했다. 환율이 800원대로 진입했던 2007년이나 1000원대에 머물렀던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판단에서다.
전자업계 역시 환율 하락세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환율이 급락하면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외환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해외 생산 물량이 많은 TV와 휴대폰 쪽은 환율 하락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지만 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 생활가전 부문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원 · 달러 급락에 위안화 절상까지…"
중소기업들 역시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원자재를 사들여 다른 나라로 수출하거나 중국에서 부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들은 위안화 절상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모듈업체인 C사는 "중국 현지 공장에서 부품을 만들어 세트업체에 공급한 뒤 1~2주마다 달러로 대금을 받는데,환율 하락으로 지난달부터 손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연초 원 · 달러 환율을 1100원 정도로 예상해서 아직 견딜 수 있지만 1100원 밑으로 가면 사업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조붕구 코막중공업 회장은 "환율 변동성이 극심해지면서 중소기업들의 경영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키코로 피해를 입은 상당수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에 손을 놓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소짓는 항공 · 정유업계
환율 급락 여파 속에서 은근히 미소를 짓고 있는 업종도 있다. 원화 강세를 가장 반기는 곳은 항공업계다. 유류 구입과 항공기 리스로 인해 외화 부채가 많아,환율이 떨어지면 부채 자체가 줄어드는 데다 여행객 증가로 매출은 늘어난다. 올해 평균환율을 1200원으로 예상한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이익은 540억원 늘어난다. 올해 평균환율을 1100억원으로 잡은 아시아나항공은 이익이 68억원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요즘 환율 급락세는 아직은 연간 사업계획 오차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어서 큰 영향은 없는 편"이라며 "환율 등락폭이 커지면 자동차 IT 수출기업이 타격을 입어 화물 물량이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환율이 1100~1200원 사이에서 유지되는 게 적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환율 급락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철광석(연간 6000만t),유연탄(연간 3000만t) 등 원료 비용으로만 연간 수조원씩 들이는 포스코 입장에선 원화 가치가 상승할 때마다 원자재 구매 비용이 줄어들어서다.
철강 반제품인 슬래브를 수입해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을 생산하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도 환율 급락의 수혜를 보긴 마찬가지다. 정유업계도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의 외화표시 부채는 총 80억달러 수준.환율이 100원 떨어지면 8000억원의 환차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 사업계획 월단위로 조정
업종마다 영향이 다르긴 하지만 산업계 전반적으로는 환율 급락세가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환율마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내년 경영계획을 고민하고 있는 대부분 기업들이 사업계획 수립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어서다. 자칫 내년 사업계획을 짜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내년 사업기준 환율을 1100원대로 예상하고 있지만,환율이 1000원대로 내려가면 지금까지 세워온 내년 계획 자체를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환율 급락세가 지속되면 원가 절감,물류 효율화,구매 합리화 등의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큰 틀에서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분기 또는 월간 단위로 미세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결제 통화와 원자재 해외 구매처를 다변화하고 원가 절감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장창민/고경봉/송형석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