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4일부터 23일까지 20일간 진행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들에 대한 증인 채택 문제가 또다시 논란을 빚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계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증인 채택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국감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김없이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증언대에 불러 세우는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감의 본질을 일탈한 습관성 증인 채택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인사 개입 의혹과 관련,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이 정무위 증인으로 채택됐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불공정 거래와 관련한 홈플러스,롯데마트,롯데홈쇼핑 임원들 및 납품단가 인하와 관련된 삼성전자 등 대기업 임원들도 상당수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또 대형 정유사와 항공사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스마트폰 불공정 약관 문제로 관련 임원들이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도 쟁점이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국회는 기업인들은 마구잡이로 부를 수 없게 돼있다. 감사 대상을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중 특별시와 광역시 · 도,기타 공공기관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정부 정책에 맞게 집행됐는지를 철저히 따지라는 것이다. 감사를 하다 보면 일부 기업인의 증언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겠지만 그것은 보조적이고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게 국정감사법의 근본 취지인 셈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국감에서 7개 상임위원회가 100명이 넘는 기업 및 단체 대표 등을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불렀다. 증인들은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2,3분 답변하고 돌아가거나 죄인처럼 호통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적지 않다. 기업인들은 국감을 준비하느라 정작 경영에는 일손을 놓아야 하고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이미지와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경총이 기업인들이 국감장에 불려나올 경우 해당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도 유 · 무형적 손실이 크다는 우려를 표명하면서 기업인 증인 채택 자제를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높아진 국민 의식 수준을 감안하면 국감의 관행도 획기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 정략에 치우친 과도한 정치공세를 자제하고 정책 감사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예산 낭비를 철저히 파헤치고 비효율적인 행정을 뿌리뽑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국민들이 대표로 뽑아준 국회의원들의 도리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다녀온 의원들은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무엇을 바라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