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이 제나라 환공을 처음 알현했을 때 환공에게 병이 있으므로 바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공이나 신하들의 반응은 퉁명했다. 그들의 눈에는 환공에게 전혀 병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병이 피부에 머물러 있다가 혈맥 속으로 들고,위와 장 사이에 들었는데도 환공이 치료하기를 마다하자 편작은 발길을 돌렸다. 마침내 그의 병이 뼛속에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환공은 병사했고 이를 예측한 편작은 도망친 뒤였다.

이처럼 눈으로 병을 진단하는 망진(望診)은 한의학의 기본적인 진단법이지만 한눈에 병세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몸에 병이 있어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어 건강해 보이는 경우 더욱 그렇다.

고대에는 이런 능력이 매우 특별한 기술로 통했지만 오늘날 의사들은 대부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몸의 작용에 관한 이론,즉 의학이다.

《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서구학자 중 중국의학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통하는 저자(베를린 샤리테의대 중국생명과학 윤리 · 이론 · 역사연구소장)가 동 · 서양의 의학사상이 전개돼 온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서구의학과 약학을 공부하다 중국의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저자는 치유에 대한 유럽과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접근법을 역사적으로 비교하고 생리학과 병리학의 기본 이론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설명한다.

또한 이를 통해 역사적 · 지역적 차이에 따라 인체 · 건강 · 질병을 서로 다르게 정의해 온 까닭도 밝혀준다.

우선 저자는 인간의 몸이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물질로 이뤄져 있는 동시에 구체적 형상이 없는 그 무엇(X)과 함께 형성돼 있다며 얘기를 시작한다. 의학은 몸과 X의 정상 및 비정상 상태가 발생하는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병과 같은 비정상 상태를 예방하고 고치려는 노력이다. 그렇다면 치유와 의학은 어떻게 다르며 의학의 역사는 얼마나 된 것일까.

저자는 치유는 선사 이래 존재해왔으나 의학은 비교적 뒤늦게 문화의 영역에 합류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치유란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게 하거나,이상이 생겼을 때 치료하기 위한 행위다. 치유는 몸에서 뜨거운 부위를 차갑게 해주는 것처럼 단순한 행위일 수도 있다. 따라서 치유에는 어떤 이론도 필요하지 않으며 순전히 경험적이다. 고대 이집트나 인도에서도 치유는 있었지만 이를 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운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에 비해 의학은 과학의 영역이다. 특정한 치료법이 의학으로 간주되려면 치유에 대한 해석이 자연법칙에 근거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치유법이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그중 일부만이 의료에 속한다는 것이다. 치유가 이론과 결합해 의학의 영역으로 발전한 것은 유럽에서는 기원전 5~4세기,중국에선 이로부터 200~300년 뒤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물질적인 몸과 보이지 않는 그 무엇(X)으로 구성된 생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연법칙,황제의 인체관과 중국의학의 탄생,의학이 배제된 본초학과 본초학이 배제된 의학,그리스의학의 탄생,에이즈,모든 다양성의 통합에 대한 전망에 이르기까지 99가지 주제로 동서양 의학사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당대의 사회 · 경제적 조건과 의학사상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