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술시장이 뜨겁다. 무엇보다 미술품 경매의 두 축인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크리스티의 상반기 매출총액은 25억7000만달러(약 2조98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다. 소더비도 작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22억달러(약 2조552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피카소의 1932년 작품 '누드,녹색 잎과 상반신'은 1억640만달러(약 1236억원)에 낙찰돼 경매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에드 돌먼 크리스티 최고경영자(CEO)가 "미술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할 정도다.

반면 한국 미술시장 성적은 초라하다. 상반기 서울옥션과 K옥션의 낙찰액을 합쳐도 375억원에 불과하다.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지난해 상반기 244억원보다는 늘었지만 2007년에 비해선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9일 열린 K옥션의 가을경매 낙찰액도 40여억원에 머물렀다. 더구나 일반 화랑을 통한 거래는 '올스톱' 상태다. 우리 경제가 빠른 속도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유는 많다. 미술시장이 경기에 후행한다는 점,잇따른 위작 시비,일부 투명하지 못한 거래 시스템,미술품이 뇌물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혐의…. 하지만 미술계에선 가장 큰 이유로 미술품 양도세 부과를 든다. 내년부터 작고작가의 6000만원 이상 작품 거래에 대해 매매차익의 20%를 과세하는 방안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할 말은 있다. 미술품 양도세는 이미 1990년 법제화됐으나 '싹트는 미술시장을 죽여선 안 된다'는 여론과 정치적 판단에 밀려 무려 다섯 차례나 시행을 미뤘으니까. 결국 2008년에 와서야 2011년부터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이런 마당에 다시 과세를 연기해 달라니 '염치를 알라'고 할 만도 하다. 조세형평성을 기준으로 하면 양도세 부과는 백번 옳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을 감안한 미술시장 규모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작년 우리 미술품 경매 총액은 702억원이었다. 지난 5월 중국 경매에서 팔린 송나라 서예가 황팅지엔의 작품 '디주밍' 한 점의 가격(746억원)에도 못 미친다. 국민화가로 통하는 박수근 작 '빨래터'의 경매가격은 45억2000만원,이중섭의 '황소'는 35억6000만원이었던 데 비해 중국의 40대 중견작가 웨민쥔의 작품 '핀인'은 83억원에 낙찰됐다. 게다가 미대를 졸업한 작가 중 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 비중은 겨우 1.6%다. 대다수가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미술제,화랑 등을 통한 매매를 비롯 총 시장규모도 3000억~40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총생산(GDP) 8325억달러,경제규모 세계 15위의 나라로선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마당에 양도세를 부과하면 컬렉터들이 몸을 사리면서 시장이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크게 흠잡힐 일이 없다 해도 과세당국에 노출되느니 아예 미술품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심리가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오히려 음성적 거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젠 미술이 문화를 넘어 산업발전의 기반이 되는 시대다. 패션 전자제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미적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술품 양도세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연 20억~30억원 정도라고 한다. 세수증대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액수다. 주식의 경우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매도할 때만 거래세 0.3%를 매기고,부동산 양도세도 시장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미술품 양도세 역시 시장이 활력을 잃은 상태에서 시행을 강행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