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진정 내 자식을 사랑하는 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부모 이기심으로 '편법' 늘어나
세상의 많은 아이 함께 생각을
세상의 많은 아이 함께 생각을
현직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논란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고위 공직자 부녀의 부적절한 처신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그보다 조금 앞선 청문회에서도 예비국무위원들 여럿이 자녀와 연관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곤욕을 치렀다. 학군 위장 전입부터 편법 증여 문제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직자나 정치권인사,심지어 대권주자가 자녀 문제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발목이 잡혀 공개적으로 망신 당한 경우를 우리는 그동안 꽤 자주 보아왔다. 고위 공직자를 새로 임명하려면 아예 처자식이 없는 이를 찾는 게 빠를 것이라는 농담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하는 한편,좀 의아하기도 했다.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거니와 아들의 군대 면제,딸의 이중국적 등을 해명하기 위해 진땀 흘리는 전임자들의 모습을 빤히 보고도,왜 그들은 욕망을 미리 절제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니까 말이야.자식새끼가 도대체 뭐기에!" 내 소박한 의문에 선배언니가 걸쭉한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일찌감치 결혼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를 둔 그녀가 요즘의 고민을 어렵잖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애가 곧 초등학교 입학이잖아.아무래도 옆 동네 사는 친정 동생네로 주소를 옮겨놔야 할 것 같아.우리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100% 요 앞 A초등학교에 배정받는데 거긴 정말 보내기 싫거든." 그녀의 말에 의하면 A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확히 양분되어진단다. 새로 지은 아파트 아이들과,오래된 주택단지 아이들로 말이다.
"친구들끼리 가정환경이 비슷한 게 좋잖아.그쪽엔 형편도 어렵고,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는 애들도 많고,또 부모가 있다 해도 먹고 살기 바빠 하루종일 방치하니까 자기들끼리 일찍부터 나쁜 짓도 배우고 그러나보더라고." 그녀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숨가쁘게 갖다 붙였다. 아이를 위해 위장전입이라도 불사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내 떨떠름한 표정을 눈치 챈 걸까. 선배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정도는 대단한 잘못 축에 끼지도 못하지 뭐.주소 옮겨 놓는 애들 우리 아파트에 얼마나 많다고.아예 강남으로 옮겨 놓고 강 건너 통학하는 애들도 있는걸." 분명 오랜 세월 잘 안다고 믿어왔던 사람인데,그녀의 얼굴이 참 낯설었다. "너도 아기 조금만 더 키워봐.내 말 무슨 말인지 수긍하게 될 테니까.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했다.
자식 가진 이는 함부로 남의 말을 하지 말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이제 나도 이런 일에 쉽게 흥분할 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젖먹이 딸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나에게도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학부모 역할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날이 닥칠 테니 말이다. 언젠가 내 앞에 놓일 여러 방향의 갈림길 앞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나의 아이'라는 말의 그 1인칭 소유격에 과도하게 몰두하지 않고서,이기적인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서 과연 양심에 한 점 거리낌 없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세상에 더 큰 도둑놈들이 득시글거린다고 해서 내 좀도둑질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오랜 화두가 될 것 같다. 세상의 다른 많은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진정 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싶다. 잠시 고민했을 뿐 그 선배도 '작은 편법' 따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평화로이 잠든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정이현 < 소설가 >
그보다 조금 앞선 청문회에서도 예비국무위원들 여럿이 자녀와 연관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곤욕을 치렀다. 학군 위장 전입부터 편법 증여 문제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공직자나 정치권인사,심지어 대권주자가 자녀 문제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발목이 잡혀 공개적으로 망신 당한 경우를 우리는 그동안 꽤 자주 보아왔다. 고위 공직자를 새로 임명하려면 아예 처자식이 없는 이를 찾는 게 빠를 것이라는 농담이 예사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하는 한편,좀 의아하기도 했다.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거니와 아들의 군대 면제,딸의 이중국적 등을 해명하기 위해 진땀 흘리는 전임자들의 모습을 빤히 보고도,왜 그들은 욕망을 미리 절제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니까 말이야.자식새끼가 도대체 뭐기에!" 내 소박한 의문에 선배언니가 걸쭉한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일찌감치 결혼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를 둔 그녀가 요즘의 고민을 어렵잖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애가 곧 초등학교 입학이잖아.아무래도 옆 동네 사는 친정 동생네로 주소를 옮겨놔야 할 것 같아.우리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100% 요 앞 A초등학교에 배정받는데 거긴 정말 보내기 싫거든." 그녀의 말에 의하면 A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확히 양분되어진단다. 새로 지은 아파트 아이들과,오래된 주택단지 아이들로 말이다.
"친구들끼리 가정환경이 비슷한 게 좋잖아.그쪽엔 형편도 어렵고,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크는 애들도 많고,또 부모가 있다 해도 먹고 살기 바빠 하루종일 방치하니까 자기들끼리 일찍부터 나쁜 짓도 배우고 그러나보더라고." 그녀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숨가쁘게 갖다 붙였다. 아이를 위해 위장전입이라도 불사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내 떨떠름한 표정을 눈치 챈 걸까. 선배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정도는 대단한 잘못 축에 끼지도 못하지 뭐.주소 옮겨 놓는 애들 우리 아파트에 얼마나 많다고.아예 강남으로 옮겨 놓고 강 건너 통학하는 애들도 있는걸." 분명 오랜 세월 잘 안다고 믿어왔던 사람인데,그녀의 얼굴이 참 낯설었다. "너도 아기 조금만 더 키워봐.내 말 무슨 말인지 수긍하게 될 테니까.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했다.
자식 가진 이는 함부로 남의 말을 하지 말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이제 나도 이런 일에 쉽게 흥분할 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젖먹이 딸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고,나에게도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학부모 역할을 본격적으로 해야 할 날이 닥칠 테니 말이다. 언젠가 내 앞에 놓일 여러 방향의 갈림길 앞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나의 아이'라는 말의 그 1인칭 소유격에 과도하게 몰두하지 않고서,이기적인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서 과연 양심에 한 점 거리낌 없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세상에 더 큰 도둑놈들이 득시글거린다고 해서 내 좀도둑질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오랜 화두가 될 것 같다. 세상의 다른 많은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진정 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싶다. 잠시 고민했을 뿐 그 선배도 '작은 편법' 따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평화로이 잠든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정이현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