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주범으로 몰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던 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8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CEO를 맡았던 마크 설리번은 최근 보험브로커 회사인 윌리스그룹의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AIG에 대한 구제금융이 이뤄지기 3개월 전에 이사회 결정에 따라 불명예 퇴진했다. 설리번은 새 직장 윌리스에서 해외 고객들을 대상으로 위험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는다.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해 AIG를 어려움에 빠트렸다는 비판을 받은 그가 다시 위험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는 점에서 월가에서 화제다.

미국 중소기업 대출 전문 금융사인 CIT그룹 CEO를 지낸 제프리 피크도 바클레이즈캐피털 투자은행사업부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CIT는 작년 말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통해 가까스로 회생했다. CIT가 부실화된 이유는 중소기업 대출 부실이 주된 이유였고 CEO였던 피크가 자산을 불리기 위해 공격적인 대출을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바클레이즈가 그를 영입한 것은 투자은행 업무와 자산운용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해서다.

이에 앞서 메릴린치 CEO였던 존 테인은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되며 내몰린 뒤 CIT CEO로 경영 일선에 돌아와 경영정상화를 추진 중이다. CIT 이사회에서 월가 유력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를 이끌었던 경륜을 인정한 것이다. 메릴린치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던 그레고리 플레밍은 현재 모건스탠리에서 일한다.

리먼브러더스에서 최고법률가로 활동했던 토머스 루소는 AIG의 법률 고문을 맡고 있다. 리먼 파산 당시 회사 경영을 이끌었던 리처드 풀드 전 CEO는 지난해 맨해튼 미드타운에 사무실을 열고 금융자문업을 하는 등 재기를 모색 중이다. 하지만 회사 파산으로 명예가 실추된 데다 리먼과 관련한 법적 문제가 남아 있어 활동은 제한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리먼에서 에너지 투자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잭 렌츠는 지난해 투자회사인 라자드에 영입되기도 했다.

비록 금융위기 직격탄으로 금융사를 망가트린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긴 했어도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일부 인사들은 새 둥지에서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