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효과'라는 게 있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빈 사망 뒤 영국인들이 얼마나 실컷 울었는지 장례식 뒤 정신과 내원자 수가 대폭 줄어든 데서 생겼다는 말이다.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거니와 실제 눈물은 가슴 깊은 곳 상처와 미움,스트레스까지 모두 씻어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눈물엔 슬픔과 분노를 담은 게 많지만 개 중엔 기쁨과 안도의 표시도 있다. 합격 소식을 듣거나 위험에서 벗어났을 때 쏟아지는 눈물 혹은 지난 2월 동계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부문에서 완벽한 연기를 마친 김연아 선수가 흘린 눈물이 그런 것이다. 정작 김 선수는 모르겠다던 그 눈물의 의미를 보는 사람은 다 알았다.

눈물엔 또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2006년 2월,제40회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하인즈 워드'는 혼혈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던 자신이 마음을 고쳐 먹은 데 대해 "어느 날 학교에 온 엄마를 모른 체하는 자신을 본 엄마가 차 안에서 우는 것을 본 다음부터"라고 털어놨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공감대를 형성,국면을 바꾸는 것도 눈물의 힘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어린아이를 부둥켜 안고 흘린 눈물은 중국 국민은 물론 티베트 문제로 차가웠던 외신들의 마음까지 돌려놓음으로써 '눈물의 설득력은 만 개의 혀보다 크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대선 후보자들의 눈물도 마찬가지다. 설사 이미지를 위해 계산된 것이라 해도 그 모습이 진짜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함으로써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눈물도 눈물 나름이다. 흘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를 치유하는 눈물이지만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는 눈물에 그런 힘은 없다.

남의 사무실 프린터를 아무 양해 없이 사용해놓곤 "말도 없이 남의 물품을 쓰면 어떻게 하느냐"는 직원에게 "태도가 기분 나쁘다"며 따지다 일의 전후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자 떨구는 사법연수생의 눈물이 슬프지 않은 게 그것이다.

일에는 절차가 필요하다. 지극히 당연한 생활의 기본태도를 지적받은 게 서러워서 울먹이는 모습은 안타깝고 안됐다기보다 이제 겨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의 마음 속에 벌써부터 자신의 행동은 뭐든 쉽게 용납되고 다른 사람은 무조건 자신에게 공손해야 한다는 특권의식이 싹터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팠다.

눈물의 힘은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국회 청문회에서 장관 내정자들이 자식문제와 관련돼 간혹 보이는 눈물은 보통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게 아니라 물어뜯는다. 자식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으면 문제 될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도리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딴 나라 국적으로 이 나라 건강보험 혜택 누리면서 스펙 갖춰 필요할 때 돌아오는 사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월화수목금금금 일해 세금 내고 정작 자신이 아플 땐 직장이 없어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건강보험료를 인두세처럼 꼬박꼬박 떼이는 보통사람들이다.

고위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대접은 보통사람보다 엄정한 도덕적 책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시저(케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울면서 '시저도 사랑했지만 로마를 더 사랑해서 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민들은 인정하지 않았고,언젠가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정치인의 눈물에도 민심은 냉정했다.

딸의 특혜 채용 논란으로 물러난 유명환 장관이 외교부 직원들에게 "물의를 빚어 미안하다"며 "자기만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국의 장관이 자기 관점 말고 남의 입장 존중도 중요하다는 걸 이제 알았다니. 고위공직자의 인식이란 게 겨우 그 정도였나 싶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이제 옛말로만 남을 것인가.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