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때는 1986년이다. 패스트푸드의 대표주자인 맥도날드가 로마 스페인 광장에 진출하려 한 게 계기다. 발끈한 이탈리아 미식가들은 패스트푸드는 음식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먹는 즐거움을 빼앗는 '바이러스'라며 들고 일어났다. 이런 주장이 국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1989년엔 파리에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파리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의 요지는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음식과 식자재 등을 지키고,품질 좋은 재료를 제공하는 생산자를 보호하며,어린이와 소비자에게 진짜 맛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자는 것.이후 패스트푸드가 영양과 칼로리의 불균형을 가져올 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떨어뜨린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제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세계 150여개국에 1300여개 지부를 두고 맛의 표준화를 거부하면서 토속음식을 지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호응은 높지만 실생활에서 슬로푸드 운동을 실천하는 건 간단치 않다. 햄버거나 피자를 덜 먹는 것은 그렇다 해도 농약 화학비료 성장호르몬 등을 써서 단기간에 재배하고 사육한 넓은 의미의 패스트푸드는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은 탓이다. 예를 들어 돼지만 해도 과거엔 육돈으로 팔려면 2년 정도 키웠으나 요즘엔 육종기술을 동원해 7~8개월 만에 시장에 내놓는다. 유전자 변이 농축산물이 우리 식탁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제대로 먹으려면 적잖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슬로푸드의 저변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슬로푸드 대회'가 오는 10~11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토종 종자와 농축산물,발효식품 등을 선보이고 음식 전문가와 만나는 자리도 마련된다. '어머니의 손맛 내기' 요리 경연,'한국 슬로푸드의 놀라운 발견'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도 열린다. 마침 대회를 앞두고 9일 고려대에선 카를로 페트리니 세계 슬로푸드 회장의 '슬로푸드의 미래'에 대한 강연계획도 잡혀 있다고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음식도 습관 들이기 나름이다. 패스트푸드와 아예 담을 쌓고 지낼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여유와 정성이 깃든 전통음식을 자주 접해 맛과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도 저도 어려우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거주하는 지역에서 제철에 나는 음식을 많이 먹어라.'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