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터졌다. 부글 부글 끓어오른던 신한금융그룹의 권력 다툼이 검찰 고소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번졌다.신한은행은 2일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은행직원등 7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은행은 고발장에서 신 사장의 친인척 관련, 여신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 조사한 결과 950억원에 이르는 대출 취급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있었고 채무자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말 특이한 일이다. 은행이 불과 얼마전까지 은행장을 지냈고 현재는 신한금융그룹의 2인자로서 지주사 사장을 맡고 있는 인물을 직접 고소한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은행 역사상 거의 처음있는 해괴한 일이다. 은행측이 주장한 신 사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 여부는 검찰의 조사로 밝혀지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그 전말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주주들이나 신한금융그룹 직원은 물론 전 금융계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든 이번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기위해서는 다툼의 본질과 그 근원을 좇아가야만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사건은 올해 4연임에 성공하면서 최고경영자(CEO)만 20년 가까이 맡고 있는 신한금융그룹의 지존 라응찬 회장과 라 회장을 20년 이상 보좌하면서 신한금융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중추 역할을 해온 그룹의 2인자 신 사장과의 양보할 수 없는 권력 다툼이 본질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바로 이백순 행장이 있다. 이 행장은 라 회장이 은행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수족이면서 동시에 일본 근무 시절 신 사장을 형 처럼 모셔온 인물이다.그가 최근 두 사람의 다툼이 불꽃을 뿜자 라 회장을 보호하기위해 전면에 나선 것이다.결국 라-이와 신의 대결이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터진 것은 지난 4월이다.당시 한나라당 법제사법위원회의 주성영 의원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하면서 혈투의 씨앗이 뿌려졌다. 주 의원은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온 박연차 사건을 꺼내들었다.당시 라 회장의 돈 50억원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계좌(차명계좌)에서 박 회장에게 전달됐는데 왜 수사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이 사건은 지난해 박 회장의 뇌물 혐의 조사 과정에서 불거졌던 것으로 세인의 이목에서 잊혀졌던 사건이었다.당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론 라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2007년 2-3월 골프장 투자 명목으로 박 회장에게 전달됐는데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바람에 수사도 중단됐다. 그런데 주 의원이 갑자기 이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라 회장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졌다.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사람이 어떻게 금융계 수장의 자리를 그렇게 오래도록 지킬 수 있느냐고 파고 들었다.

주 의원의 예상치 못한 질문이 쏟아지던 당시 신한금융은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 은행처럼 보였다.오히려 국내은행중에서 시가총액도 가장 크고 외국 주주들의 신뢰도도 가장 높고 라 회장의 리더십도 한치의 바람이 새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공고해 보였다.하지만 내부에선 미묘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라 회장이 4연임함으로써 라 회장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던 신 사장이 과연 그 자리를 이어받을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실제 신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이어서 라 회장이 그때 회장 자리를 물려주지 않거나 신 사장을 연임 시키지 않으면 신 사장은 집으로 가야 할 판이었다.외부에선 어떤 형태로든 라 회장의 권력이 신 사장한테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만큼 신 사장은 라 회장 못지않게 금융계의 신망이 두터웠다.은행 발전의 공로만으로 치면 결코 라 회장 못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권력 승계를 의심할 만한 이상한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 회장의 신 사장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고 신 사장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신 사장 흠집잡기에 올인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라 회장이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신 사장이 온 몸을 던져 라 회장 구하기에 나섰는데도 신 사장이 오히려 라 회장을 흔들었다는 신 사장 반대파들의 얘기에 라 회장이 귀를 기울이며 신 사장에게 섭섭한 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신 사장이 라 회장을 위해 밤 잠 안자고 나섰다는 것은 서초동 검찰쪽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어서 이 문제는 금방 잊혀지는듯 했다.그런데도 라 회장의 측근들은 신 사장 밀어내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주 의원이 라 회장의 차명계좌를 꺼내들자 라 회장측에선 신 사장이 기획한 것이라며 정면 대결의 칼을 뽑은 것이다. 주 의원이 갑자기 라 회장 차명계좌를 앞세워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정보 제공이나 사주 없이는 불가능하며 그것을 주도한 어떤 중소기업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신 사장과 가까운 사이라고 라 회장측에선 믿은 것이다.

코너에 몰린 신 사장은 2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형님 같은 라 회장과 결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생존 전략을 짜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라 회장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차명계좌를 사회적인 이슈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공교롭게 일부 신문에서 라 회장 차명계좌의 비도덕성을 물고 늘어지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야당 의원까지 들고 나왔다. 급기야 금융감독원에서도 검찰의 자료를 받아 신한은행 조사에 나섰다. 야당 의원들은 1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추궁할 계획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벼르고 나선 것은 라 회장의 장기 집권뒤에는 권력 실세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사실 라 회장이 올해 4연임을 앞두고 있을때 금융계에서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신 사장이 신한지주의 사장을 맡은지 1년밖에 안돼 주주들은 라 회장이 좀더 자리를 지키면서 후계 구도를 확고히 하는게 좋다는 여론도 많았지만 한 개인의 장기 집권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어찌됐든 야당은 라 회장과 이상득 의원의 연결고리를 의식한듯 라 회장의 차명계좌건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신 사장은 그런 흐름을 우호적인 환경 변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백순 행장이 라 회장의 행동대장으로 나서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진전됐다.이 행장은 라 회장을 아버지처럼 , 신 사장을 형님처럼 받들어왔지만 결국 권력의 정상에 있는 라 회장을 위해 몸을 받치기로 결정했다.이유는 조직의 2인자가 1인자를 깨물면 조직 체계가 망가지고 또다른 역모가 일어날수 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이 행장은 신 사장이 라 회장을 몰아내기위해 공작을 폈고 그것은 조직 윤리상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다음 신 사장 타도에 뛰어든 것이다.그 과정에서 아무도 예측못했던 950억원 대출비리및 횡령 혐의가 튀어나왔다.신한은행은 민원이 접수돼 조사한 결과 혐의를 잡았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지만 조직적인 신 사장 비리 파헤치기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부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검(檢)의 칼을 빌려 2인자를 베어버린다는 강수를 뒀다는 추정이다.당시 대출건의 진상은 검찰 조사가 나와봐야 밝혀지겠지만 신 사장측에선 터무니 없다고 반박한다. 모든 대출이 은행장 판단으로 이뤄지는게 아니라 여신관리 위원회를 통하기 때문에 은행장의 압력이 들어가지 않고 그런 일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대출은 경기도 파주 금강산랜드 시설자금
이다.

상황은 최악으로 나빠졌다.검찰 수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신한금융그룹의 이미지는 먹칠이 됐다. 신 사장의 배임및 횡령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신 사장 개인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은행의 이미지도 엉망이 될 거다.만일 신 사장이 무혐의로 판결나면 이를 주도한 세력도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고 역시 신한금융의 브랜드는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옆에서 사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가 있다.

첫째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조직에도 태양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권력의 승계가 불투명해지면서 이번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만일 라 회장이 4연임한 것을 고려해 적절한 시점에서 신 사장에게 물려주겠다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호를 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라 회장은 그런 신호를 주는 듯하면서도 의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은행측 사람들의 얘기다.결국 권력의 향배가 모호해지면서 있을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국내 은행중 지배구조가 가장 안정됐다는 곳에서 핵폭탄이 터진 것은 그만큼 권력의 배분은 쉽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둘째 그 권력을 마치 자신들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아직도 경영자들이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한금융그룹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명백히 주주들의 것이고 고객들의 것이고 직원들의 것이지 몇몇 경영자들의 사유물이 아닌데도 경영자들은 마치 자기가 만들어낸 왕국 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신한금융지주만 해도 재일동포지분이 17%여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라 회장의 리더십도 거기서 나온다.하지만 재일동포 주주가 모두 라 회장만을 미는 것은 아니며 재일동포외에도 단일 최대주주인 BNP 파리바(지분율 6.35%)를 비롯해 국내외 주주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 주주들과 신한은행을 국내 최고의 은행으로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 그들을 믿고 사랑하는 고객들이 신한금융이라는 막강한 성을 쌓은 것이다. 그들을 무시한 경영진들의 다툼은 결국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이번 신 사장의 고발 건을 지켜본 금융인들은 모두 혀를 찬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의아하다 못해 황당하는 반응이다. 주주와 고객 그리고 금융산업 전체를 생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못내 감추지 못하고 있다.

셋째 이번 고소 사건으로 한국금융은 10년이상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은행에서 CEO의 횡령과 배임 혐의가 제기되면서 지배구조가 요동치면 그 파장은 신한금융에서만 그치는게 아니다. 수사 방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신한금융그룹의 경영지배구조가 송두리째 바뀌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물론 금융감독당국 청와대까지 개입하면서 국내금융산업의 자율성도 후퇴할 수 밖에 없다.얼마전 벌어진 KB금융 사태가 이를 말해준다. 국내 다른 은행에도 온갖 의혹의 시선이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외적으로도 이런 망신이 없다. 당장 단일 최대 주주인 BNP파리바는 어쩔줄 몰라 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인들에겐 참으로 이상하고 우울한 날일 게다.

고광철 논설위원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hankyung.com/deangoh/2636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