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꿀 발라 뒀냐?" 한 해에 서너 번은 중국행 출장 짐을 꾸리는 나에게 남편이 툭 던지는 말이다. 5년 전부터 중국의 중의약 분야 국가 연구기관인 중의과학원과 전통의학 과학기술 교류를 하고 있다. 한 해씩 교대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침과 뜸을 주제로 만난다.

중의과학원 침구연구소의 쭈빙 소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내년이 60주년이 되는 연구소의 수장인 그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침 뜸의 치료 원리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첫 만남은 서로 예의를 갖추느라 유리벽을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당시 중의학이 궁금해 방문하는 서구 과학자들의 일회성 방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눈도 잘 맞추지 않았다.

그런 그와 이제는 베이징을 갈 때마다 바쁜 시간을 서로 맞춰서 꼭 만나야 할 만큼 상호 멘토링 관계가 되었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가치를 확대하고 세계 의료시장에서의 역할 증대를 위해서는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는 공통된 비전에 대해 의기투합을 하면서부터다.

어느 날인가 뜨거운 날씨에 공작 깃털로 만들어진 부채를 건네받고 재빠르게 부채질을 했더니 손을 잡고 멈추게 한다. 천천히 새가 여유 있게 날갯짓하듯 부채 부치는 법을 알려준다. 눈을 감고 따라해 보니 바람의 여유가 느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 친구라고 필자를 소개하는 그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이번 중국 출장에서 떠나오는 필자에게 그는 '내용과 형식을 잘 살펴 힘을 안배하라'고 조언했다. 남보다 이른 나이에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필자를 그동안 지켜보면서 내놓은 애정 어린 충고이리라.

며칠 전에는 뜻밖의 선물에 가슴 뭉클해졌다. 연구실로 배달 온 작은 상자에는 조그만 수공예품 팔찌와 귀고리가 있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친구 '사피로'로부터 전해온 선물이다. 올해처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던 6년 전 여름.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그녀를 만났다.

외고 2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리마로 유학간 뒤 지금은 남미를 주 무대로 무역업을 하는 당찬 한국인 여성 실업가이다. 한국에 인편으로 보낸 선물을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게 보내면서 '가을에 귀국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멋스러운 올림머리와 유창한 스페인어 통역에 매사에 열정적이던 그녀.아마존 전통 의료지식과 자생식물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이라는 연구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놀라운 협상 능력을 보여준 그녀는 동갑내기였다.

먼 타국에서 그녀의 활약상은 필자에게 무용담처럼 들렸고,도전하는 삶을 일깨워줬다. 지금도 새로운 일을 개척해야 할 때 사피로를 생각한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 시작하는 거야.그런 힘을 나에게 준 오랜 친구가 가을에 온다고 한다. 벌써부터 설렌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가을이다.

최선미 < 한의학연구원 본부장 smchoi@kiom.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