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

1368년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원순제)는 주원장의 북벌군이 대도(북경)로 진격하자,미련없이 북경을 떠나 막북(漠北·고비사막 북쪽)으로 몽고의 대군을 거느리고 철수했다.몽고는 이제 중원을 지배할 ‘천명’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졌지만,여전히 토곤 테무르의 수중에는 진시황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국옥새(傳國玉璽)’가 있었다.전통시대 중국에서 이 전국옥새는 ‘권력’과 동의어로 사용됐고,천명을 받은 중원의 지배자라면 당연히 이 신성한 도장을 소유하고 보호하는 존재여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몽고족을 중국대륙에서 몰아낸 주원장은 “천하가 일가가 됐지만 미결된 일 3가지가 마음에 걸린다”며 “전국새를 얻지 못한 것이 토곤 테무르를 잡지 못한 것보다 더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설속 도장인 전국옥새(傳國玉璽)는 춘추전국시대의 귀한 보물인 ‘화씨지벽’이라는 명옥(名玉)으로 제작된 것으로,시황제는 재상인 이사에게 ‘수명어천,기수영창(受命於天,旣壽永昌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장수를 누리고 영원히 번창하리라)’라는 문구를 전서(篆書)로 새겨넣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옥새를 시황제의 손자가 한고조 유방에게 바친 뒤 한나라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지게 된다.옥새는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의 손에 잠시 넘어갔다가 후한 광무제가 다시 찾게 된다.옥새는 후한 말년 혼란기에 유실됐다가 소설 『삼국지』에 묘사됐듯 손견과 원술을 거쳐 조조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옥새의 운명은 중국사에서 여러 왕조가 명멸하는 가운데에서도 중원의 지배자들 손을 거쳐갔다.위진남북조와 수,당,후량,후당까지 후당의 마지막 황재가 분신할 때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기 오리지널 전국옥새는 사라지고 이후 나타난 것은 위조품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역대 왕조를 통해 전국옥새는 다시 나타난 것으로 전해지는데.위조여부는 알 수 없지만 송대 지배자들 역시 전국옥새를 하늘의 뜻에 따라 손에 넣었다고 주장했고,남송을 멸망시킨 몽고족의 원나라도 송나라로부터 옥새를 물려받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여하튼 진품여부는 의심스럽지만 소위 전국옥새를 가지고 막북으로 달아난 토곤 테무르가 죽은뒤 이 도장은 토곤 테무르의 후견인이었던 올제이 테무르에게 넘어갔고,올제이 테무르는 동몽고족인 오이라트의 군대에 합류하게 된다.하지만 올제이 테무르가 오이라트 조장 마흐무드에게 1416년 암살당하고 이 전국새는 마흐무드의 수중에 떨어진다.

마흐무드는 곧 명나라 영락제에게 이 전국옥새를 돌려주는 방안을 협상하지만,이미 전국새를 포기하고 다양한 용도로 세분화된 17개의 옥새를 새로 마련했던 명나라는 더이상 전국새에 목메달 이유가 없었다.이에 따라 이 ‘신성한 도장’은 대를 이어 몽골 칸들의 손을 거쳐갔고,만주족의 후금이 몽고족을 지배하에 둔 뒤인 1635년에는 결국 홍타이지(청태종)에게 이 도장이 전해지게 된다.

대원전국(大元傳國)옥새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던 이 도장을 손에 넣자마자 홍타이지는 국호를 대청(大淸)이라고 고치게 된다.결국 청나라가 입관에 성공,청태종의 9번째 아들 순치제가 6세의 나이에 명나라가 황궁으로 사용하던 자금성에서 천자에 등극하면서,순치제 옆에 있던 이 도장은 명의 멸망과 청의 지배라는‘천명’을 다시금 상징하는 존제로 부각된다.

이후 청나라 역대 황제들 사이에서 귀중한 보물로 소중히 전해지던 이 도장은 청나라가 망한 뒤에는 1920년대 중국 주요 군벌들이 너도나도 소장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결국 장개석의 수중에 들어갔던 이 옥새는 2차 세계대전과 국공내전의 화마를 살아남고 현재 대만 고궁박물원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물론 진시황때 오리지널 버전인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송대 이후 천여년간 권력자의 상징 역할은 톡톡히 해온 물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국새 제작 과정의 사기와 횡령 의혹으로 전국이 시끄럽다.이에 따라 국새의 권위와 아우라도 많이 손상된 것도 사실이다.또 국새 제작을 둘러싼 복마전 양상은 많은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나라의 도장을 둘러싼 최근의 해프닝을 바라보면서,문득 2000여년간 중국의 지배자들과 운명을 같이했던 또다른 도장의 전설적인 소유의 역사가 생각났다.과연 도장의 어떤 힘이,그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일까.그리고 손상된 대한민국 국새의 권위는 되찾을 수 있는 것일까.

<참고한 책>
Shih-shan Henry Tsai, Perpetual Happiness-The Ming Emperor Yong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01
오함, 주원장전,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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