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1955년 76세로 사망한 이유는 복부대동맥류 파열이었다. 미국 영화배우 루실 볼(1989년 사망),조지 스콧(1999년 사망) 역시 이 질환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은 무릎 뒤쪽의 슬와동맥류로 하지를 절단할 뻔했다.

몸 속에 존재하는 모든 동맥엔 동맥류(瘤 · 혹)가 생길 수 있다. 생긴 위치에 따라 증상이나 위험성은 약간 다르지만 대개 터지는 순간 대량출혈로 이어져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동맥류는 정상동맥보다 직경이 50% 이상 증가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다. 가장 큰 동맥인 복부대동맥은 뱃속 한 가운데를 수직으로 관통하는데 정상 직경은 약 2㎝이지만 50% 이상인 3㎝ 이상으로 확장되면 복부대동맥류라 한다. 마찬가지로 복부대동맥 아래 쪽에 있는 장골동맥(정상 직경 약1㎝)이 1.5㎝ 이상 확장하면 장골동맥류,뇌로 올라가는 뇌동맥(정상 직경 1.5~1.7㎝)이 2.5㎝ 이상 불어나면 뇌동맥류다.

동맥류가 발생하는 과정은 대개 세 가지로 설명된다. 우선 혈류역학적 이론으로는 심장박동에 의해 과도한 스트레스가 동맥벽에 누적적으로 전달되면 동맥벽이 약해져 동맥류가 형성된다. 젊은층보다 65세 이상의 노인층에서 동맥류가 4~5배 많이 발생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생화학적으로는 동맥벽을 이루는 엘라스틴과 콜라겐 등을 분해하는 기질단백분해효소(Matrix metalloproteinase)가 증가하면 동맥류가 발생한다. 또는 이 분해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체내물질이 부족해지면 동맥류가 생긴다고 의학계는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유전적 경향.가족 중에 동맥류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동맥류 발생 확률이 18배나 높아진다.

복부동맥류는 뱃속에 장착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통상적으로 복부대동맥류가 파열된 경우에는 50%가 병원 도착 전 사망하며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라도 절반은 과다출혈 및 장기손상으로 수술 전 목숨을 잃는다. 전체 인구의 1~4%,65세 이상 인구의 4~9%가 환자일 만큼 유병률이 높은 데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맞춰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서 복부대동맥류로 진단된 환자는 2000년 412명에서 2008년 2448명으로,수술한 환자는 103명에서 612명으로 각각 6배 가까이 늘었다.

복부동맥류는 여자보다 남자에게서 5배 더 자주 발생한다. 남자는 50세 이후,여자는 60세 이후에 급격히 증가하는데 65세 이상 남성 노인의 4~8%,여성 노인의 0.5~1.5%에서 발생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뇌동맥류는 여성이 남성보다 발생률이 1.5배 정도 높다. 뇌동맥류도 한번 파열하면 사망률이 50%에 이르고 재출혈되면 70%로 올라가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남성의 복부 대동맥류 발생이 월등하게 많은 것은 흡연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성에게 뇌동맥류가 많이 생기는 것은 여성호르몬이 복부대동맥에서는 혈관 확장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반면 뇌동맥에서는 반대로 혈관 확장을 유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복부대동맥류는 △65세 이상 고령 △남성 △흡연 △고혈압 · 고지혈증 ·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 △가족력 등이 발병 위험을 높이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증상이 없더라도 사전검사를 통해 위험을 파악하고 예방조치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명치와 배꼽 사이에서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덩어리가 잡히면 복부대동맥류를 의심할 수 있으나 대개는 검사 도중 우연히 발견된다. 초음파,컴퓨터단층촬영(CT),또는 CT-혈관조영술(CTA) 검사를 시행한다. 뇌동맥류는 뇌CT,뇌MRI(자기공명영상촬영),뇌MRA(자기공명혈관조영술),뇌CTA 등을 실시한다.

복부대동맥류로 진단되면 개복 후 동맥류 부위를 인조혈관으로 대체하거나,배를 가르지 않고 방사선 투시하에 스텐트(지지대)를 삽입한다. 개복수술은 복강과 폐,심혈관계에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스텐트 삽입술보다 높지만 성공할 경우 5년 동안 특별한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에 비해 스텐트 삽입술은 조기회복,조기퇴원이 가능하고 수술 합병증이 적지만 수술 후 6~12개월 간격으로 초음파나 CT를 통해 추적 관찰해야 한다. 동맥류라도 직경이 크지 않으면 초음파나 CT검사로 추적 관찰하면 된다. 뇌동맥류는 뇌를 열지 않고 허벅지를 통해 형상기억합금의 색전코일을 넣어 터질 부위를 막아버리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예방할 수 있다.

이 밖에 내장동맥류(비장동맥,간동맥,복강동맥,장간막동맥,콩팥동맥의 확장),말초동맥류(팔이나 다리동맥의 확장) 등이 있는데 진단방법과 치료원리는 복부대동맥류나 뇌동맥류와 비슷하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