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첫번째 방북 이후 16년만에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채 첫날밤을 보내 주목된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25일 오후 4시30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리근 미국국장의 영접을 받고 평양시내로 이동했다.

이어 남한의 국회의사당 격인 만수대의사당에서 형식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환담한 다음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 상임위원장이 마련한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1994년 판문점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이 처음 방북했을 당시 노동당 외교부장으로서 영접 의전을 주관한 인물이기도 하다.

북한 매체의 보도는 없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첫날 일정을 백화원 만찬으로 끝내고 외국 정상급 귀빈의 숙소로도 자주 이용되는 백화원에서 묵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써 관심을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은 방북 이틀째인 26일로 넘어가게 됐다.

작년 8월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도착 첫날 김 위원장을 만나 1시간15분 가량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2시간여 만찬행사를 가졌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에 카터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는 것 자체는 거의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북미 관계가 경색된 탓인지 카터 전 대통령이 16년만의 방북 첫날밤을 `빈손'으로 보낸 것을 놓고 이런 저런 해석이 나온다.

먼저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도착 시간이 늦어져 의전상의 문제로 김 위원장 면담 일정이 다음날 잡혔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작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낮 12시30분께 평양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오후 4시30분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곧장 시내까지 이동해 김 위원장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카터 전 대통령이 86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냉랭한 북미 관계 때문에 북한이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내세워 일종의 `탐색전'을 벌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면담과 만찬을 하면서 카터 전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가져왔는지 미리 떠보려 했다는 얘기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어쨌든 방북 이틀째이자 마지막 날이 될 26일에는 김정일 위원장과 카터 전 대통령의 만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8개월째 억류중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씨의 석방을 약속하면서까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원한 것을 보면, 꼬일대로 꼬인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지도 큰 것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카터 전 대통령이 `1박2일' 일정으로 평양에 갔다면 김 위원장 면담은 26일 오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하면 두 사람이 면담 후 자연스럽게 오찬을 함께 하면서 충분히 대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카터 전 대통령의 귀국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 연장선에서 두 사람이 26일 오후 면담을 하고 만찬까지 자리가 이어질 경우 카터 전 대통령의 귀국 일정이 27일로 하루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

전세기를 타고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간 만큼 일정을 하루 연장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양무진 교수는 "김 위원장과 카터 전 대통령 모두 원하는 것이 있는 만큼 면담은 꼭 성사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일정을 연장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 26일 오전이 됐든 오후가 됐든 `김 위원장 면담-곰즈씨 사면-귀환'의 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