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의 역사는 길다. 메소포타미아에선 기원 전 5000년께 돌과 조개껍질에 문자나 문양을 새겨 썼고,고대 이집트에선 기원 전 2000년경 황금충 모양의 석인(石印)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에선 기원 전 1000년 동물이나 사람 모양을 새긴 도장이 유행했다고 할 정도다.

우리의 경우 단군의 할아버지인 천제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보냈고,기원 전 2세기엔 부여에서 '예왕지인(濊王之印)'이란 옥새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엔 인부랑(印符郞)이 있어 궁정의 인장을 관장했고,개인의 인장 사용도 일반화됐다.

신분이나 계급 혹은 부(富)의 상징에서 사실 확인 내지 틀림없음을 입증하는 표시로 바뀌면서 도장은 누구에게나 없어선 안될 필수품이 됐다. 각종 증명서와 계약서는 물론 이력서와 품의서,은행계좌 개설에도 필요하다 보니 초 · 중 · 고 졸업선물로 학교에서 도장을 주는 일도 흔했다.

도장의 재료는 회양목과 대추나무,상아와 뿔,금 · 은 · 동 · 옥 · 비취 · 수정,도자기 · 플라스틱 · 인조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글씨체도 전서체 · 명조체 · 굴림체 등 여러 가지이고,모양 또한 뚜껑없는 목도장처럼 단순한 것부터 위아래 구분되지 않는 원통형,결재할 때 쓰는 길쭉한 콩도장(사무용 도장)과 네모난 법인도장까지 각양각색이다.

도장이 중시되고 특히 인감도장은 더 특별하게 여겨지다 보니 예전엔 가까운 지인이나 윗사람에 대한 해외여행 선물로 옥이나 상아로 된 도장재료를 사오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인으로 대체되면서 도장의 용도는 줄었다.

도장을 선물하던 관습이 남아있던 걸까. 새 국새 제작 후 남은 재료로 만든 금(金)도장이 정 · 관계 인사들에게 전달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로비용이든 아니든 금도장을 실제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유명인이 제작했다면 서체와 모양은 물론 성명에 미칠 수 있다는 영향까지 고려했을 테지만 문제가 되는 걸 보면 그다지 운(運) 좋은 물건은 아닌 모양이다.

수십억원짜리 계약을 하는 사장들의 도장은 의외로 뚜껑만 달린 목도장이 많다고 한다. 이름이 새겨진 만큼 처분할 수도 없을 테니 갖고 있어봐야 애물단지이기 십상이다. 행정안전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니 두고 볼 일이지만 과도한 물건이다 싶으면 욕심내지 않는 게 도리다.

박성희 <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