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100엔숍'의 대명사 '다이소(大創)'.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다이소는 종합양판점(대형할인마트)이나 슈퍼마켓 앞에 트럭을 세워놓고 쇼핑객들이 100엔(약 1300원)짜리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도록 자극하는 이동판매업체에 불과했다.

1991년 일본에서 '대규모소매점포법(2000년 폐지되고 '대규모소매점포입지법'으로 바뀜)이 생기면서 대형 소매점에 대한 출점 및 영업시간 제한이 약해졌다. 다이소는 상설점포로 전환하기 시작해 마치 대지를 휩쓰는 '메뚜기떼'처럼 무섭게 세력을 넓혔다.

《위대한 기업을 뛰어넘는 이기는 기업》은 한국보다 10~20년가량 앞섰다고 평가받는 일본 유통업계의 변천사와 성공 기업들의 비결을 파헤친 책이다. 일본의 여러 대학을 거쳐 유통과학대학에서 유통산업을 연구해온 저자는 세븐&아이 홀딩스,이온,한큐,다이에,유니 등 일본 유통기업들의 역사와 강점을 소설처럼 흥미롭게 엮었다. 물론 이들 기업의 경영전략 등 이론적인 면도 알기 쉽게 담아냈다.

일반적으로 소매기업의 'POS(판매시점관리)' 시스템은 잘 팔리는 상품을 중심으로 품목 수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다이소는 달랐다. 괴짜 창업자인 야노 히로타케는 오히려 특정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을 경계하며 "다이소는 POS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연막작전을 폈을 정도다. 잘 팔리는 상품은 그만큼 고객이 빨리 싫증낼 수 있어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라는 논리였다. 대형마트에선 고작 5종류에 불과한 양동이가 다이소에선 50~100가지나 됐다.

전문가들은 무한한 상품 개발이 재고로 이어질 것이라며 다이소의 실패를 예고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들이 틀렸다. 다이소는 공격적인 점포 확대로 다품종 대량 재고를 소화하고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실속 있는 소비 패턴으로 변모한 일본인들의 스타일에 부합했던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어 '저렴하지만 품질 좋은,재미있는 쇼핑 레저 공간'을 실현해냈다.

지난 1월 편의점 '세븐일레븐'으로 잘 알려진 세븐&아이 홀딩스 그룹 계열의 백화점 '세이부' 유라쿠초점은 쌓이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저자는 지난 3월 말을 기준으로 올해 안에 폐점할 것으로 알려진 일본 백화점 수만 10군데가 넘는다고 말한다.

백화점과 종합양판점에서 편의점과 드럭스토어로 유통의 주역이 바뀌었다가 다시 최근에는 야마다전기(가전 양판점),유니클로와 H&M(캐주얼 패스트패션 매장),니토리(가구 인테리어점) 등 전문 체인점이 득세하는 일본의 유통 변천사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철수한 '고객에게 거만했던' 까르푸의 사례,생존을 위해 경영 통합을 선택한 맥주회사 기린과 산토리의 교섭,미국과 일본의 상업 문화 차이 등도 흥미롭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