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 '공기업 역할론'을 들고 나오자 공기업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정부는 "공기업들이 청년층 채용을 늘려야 국가적인 현안인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공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공기업들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라 현재 있는 인력도 줄여야 하는 마당에 신규 인력을 어떻게 채용하라는 것이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놓고 공기업들 사이에 정부 눈치보기가 극심해지고 있다. 정부에 약속한 인력감축 계획을 맞추려면 신입사원을 뽑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부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9일 주요 공기업 17곳의 하반기 청년 채용 계획을 파악한 결과 한국전력 가스공사 석유공사 KOTRA 등 13곳은 아직 계획도 세우지 못한 '미정'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사원을 뽑겠다는 곳은 광물자원공사(14명),지역난방공사(80명),한국수력원자력(200명),가스안전공사(인턴 26명 중 15명 정규직 전환) 등 4곳뿐이었다.

'미정'이라고 밝힌 한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정부의 인력 감축 계획에 맞추려면 사실 하반기에 신규로 채용할 여력이 없다"며 "하지만 채용계획이 없다고 나가면 안 되니 그냥 정해진 바 없다고 써달라"고 말했다.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인력을 감축하려면 명예퇴직을 시키든지,신입사원을 뽑지 말든지 해야 하는데 갑자기 고용을 늘리라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2008년 12월 제4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기업별로 인력감축 목표를 총인력 대비 10~30%로 제시하고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도록 했다. 한국전력의 경우 정부가 제시한 감축률은 11.1%다. 여기에 맞추려면 현재 인원(1만9700명) 기준으로 2200명 가까이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퇴직 등으로 인한 자연 감소분은 연간 500명 정도다. 강제 구조조정 없이는 2012년까지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공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공기업 관계자는 "강제 구조조정 없이 인력감축 계획을 맞추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신규 채용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하반기 신규 채용 여력이 있는 곳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력 감축 계획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신규 인력 수요가 있는 공기업에 대해선 예외를 두는 식으로 유연성 있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하지만 다음 달 초 내놓을 범 정부 차원의 '청년실업 종합대책'에서 모든 공기업에 일정 비율의 청년고용을 의무화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매년 진행하는 공기업 및 기관장 평가에 청년고용 실적을 점수에 반영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정종태/서기열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