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는 미친 사람 같더니 2007년에는 선지자가 되었다. "

미국 뉴욕대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루비니 교수는 200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강당에 모인 경제학자들에게 이른바 '12단계 붕괴론'으로 회자되는 경제위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전무후무한 주택시장 붕괴,오일 쇼크,급격한 소비경기 위축,그에 따른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국가경제가 곧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주택 소유자들이 수조달러에 이르는 주택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세계 경제시스템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위기가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을 무너뜨리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같은 거대 기업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거라고 그는 단언했다.

청중들은 그의 전망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관론자라고 해서 '닥터 둠(Dr.Doom)'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그러나 그후 1년 반이 지나자 루비니 교수의 예측은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2008년 초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유동성 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했지만 루비니 교수는 더 무서운 신용위기가 가정과 회사를 덮칠 것이며 무엇보다 금융회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측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2개의 주요 중개회사,즉 투자은행이 무너질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됐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강제 구조조정에 따라 은행지주회사로 바뀌어야 했다.

《위기 경제학》은 루비니 교수가 스티븐 미흠 조지아대 교수와 함께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과 그 이후를 전망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투기부터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경제위기의 역사를 살펴보고 위기의 원인과 탈출을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저자들은 위기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며 경제위기란 대부분 거품경제에서 시작되는 일반적이며 상대적으로 예측하고 깨닫기 쉬운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최근의 금융위기 역시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라 진행된 것이며 그 여파가 수십 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향후 세계 경제가 속도가 더디고 체감효과가 적은 'U자형'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금융위기 이후의 전망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에 관한 내용이다. 브라질 · 러시아 · 인도 · 중국(BRICs)으로 대표되는 신흥경제국 대열에 들어갈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한국을 꼽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만일 BRICs 국가에 한국이 포함된다면 BRICs는 BRICKs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한국은 정교한 첨단기술로 무장한 경제 대국이자 혁신적이며 역동적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한 국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머지않아 중국이 일본을 밀어낼 것이라는 이들의 전망은 지난 4~6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앞지르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