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61년 5 · 16혁명 이후 혁명정부 공약의 하나로 TV방송국이 설립됐다. 당시는 TV수상기 보유가구 수가 한 국가의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국제 통계가 잡히던 시대였다. 이렇듯 서둘러 하드웨어를 마련한 우리는 방송시간을 채울 소프트웨어의 60~70%가량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야만 했다. 이 같은 상황이 많은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 나타나면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정치적 종속을 막 벗어난 국가들의 문화적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문화제국주의' 또는 '미디어제국주의'라는 이론으로 강력히 제기됐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런 을의 입장에서 갑의 입장으로 바뀐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자존심 고양에 기여한 한류가 제1막을 내리고 제2막이 시작돼 또 다른 기대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 중이다. 대장금,겨울연가 등 드라마 수출로 촉발된 국내방송의 해외 진출은 최근 일본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음악 등 기타장르로,중장년층에서 10~20대 젊은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에 대한 인기는 뷰티,어학 등 연관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한류의 1막이 내려갈 때 2막을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에 대해 어느 정도 교훈을 얻었다.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 수출은 한계가 있음을 알았고 현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수출은 시간 문제이지 조만간 벽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은 한국 드라마의 수입이 늘자 2006년부터 심의를 강화해 사실상 수입을 제재하고 있다. 일부 드라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입이 거절되기도 한다. 물론 문화침투를 우려하고,자국 방송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미디어 기업들은 '현지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5년 일본 시장 진출 이후 중국,동남아 및 미국 등에서 활발한 글로벌 사업을 전개 중인 국내의 한 유료방송채널사업자는 단품 프로그램 수출보다는 다양한 플랫폼에 채널 형태로 진입하고,현지 파트너와의 공동제작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방송채널이 현지에 진출해 그 나라의 제작진,배우,촬영지 등을 활용해 공동제작을 늘리게 되면 자국에 대한 투자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현지 국가로부터의 문화적 거부감도 줄일 수 있다. 일본의 Mnet채널에서는 한류스타가 출연하는 현지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젊은 여성 가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러한 현지화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전제돼야 할 것이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나라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소비해 주는 쌍방향적인 문화교류 전략이 필요하다. 또 그들 국가 안에서 고유문화 보존,전통문화 계승 등의 사업에 기업 및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해외 진출 의지와 경험을 가진 방송사업자가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지원해야 한다. 국내 유료방송채널 사업자들의 경우 매출점유율 33% 초과 제한에 걸리고,5000억원 이상으로 매출을 확대할 수도 없고,어느 지역의 케이블에서도 특정 사업자의 채널을 20% 이상 초과해 편성할 수 없다는 중복적인 소유규제에 묶여 있다.

중국의 대표적 미디어 기업인 SMG의 매출이 1조3000억원을 넘고,일본 민영방송 후지TV는 매출이 6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이 현지 기업과 콘텐츠 투자 규모면에서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경쟁력 있는 채널사용사업자(PP)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중복적인 소유규제를 좀 더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한류의 동력은 '문화적 민감성'을 전제한 유연한 현지 투자에 있다.

박동숙 < 이화여대 방송영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