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행복의 정복' 도입부에 이렇게 썼다. '사춘기 때 나는 인생을 증오해서 자살 일보 전까지 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나는 내 죄와 결점,어리석은 짓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했다. 내 눈엔 내가 불행의 표본처럼 보였다. '

그는 그러면서 끔찍한 충동에서 벗어나게 된 건 스스로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결점에 무관심해지는 한편 관심을 밖으로 돌린 다음부터라고 적었다. 외부에 대한 관심 역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자기 혐오로 생기는 것과 달리 생의 본질을 파괴하진 않는다는 주장이다.

러셀 같은 이도 그랬으니 보통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10대는 누구에게나 힘겨운 시기다. 사춘기는 더하다. 세상은 뒤죽박죽이고 어른들은 죄다 엉터리 같아 자꾸 화가 난다.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기는커녕 무조건 구속하고 강요하려 드는 듯해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기만 하다.

부모와 마주하기 싫다 보니 가능하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부모들의 속을 뒤집는 이런 행동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 사춘기의 특성이다. 몸은 어른에 가깝지만 뇌, 특히 논리적 사고와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결과라는 얘기다.

안그래도 힘든데 어렸을 때부터 줄곧 공부에 매달려야 하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2009년 초 · 중 · 고생 자살이 전년보다 47%나 급증(202명)했다는 소식이다. 고교생(69%)과 중학생(28%)이 대부분이지만 초등학생도 3%나 됐다. 원인은 가정불화 및 가정문제, 우울증,성적 비관 순이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든 충동적 자살도 29%에 이른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누구 한 사람만 옆에 있어주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도 살아갈 용기를 낸다. 부모의 인내와 보살핌이 중요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의 경우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는 절대적이다.

연간 202명은 기가 막힌 수치다. 지난해와 올해 7545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신종플루 사망자는 252명(4월20일 현재),그것도 7~18세 사망자는 11명뿐이었다(0~6세 13명, 19세 이상 228명).교육과학기술부가 교사의 대응을 위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라지만 그 정도보다 좀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책과 그에 상응한 예산 확충이 필요한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