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 피에르 클레망 뒤비숑, 30년간 바순 연주…"음악도 외교도 잘 듣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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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레망 뒤비숑 주한 벨기에대사
눈에 띄지 않고 저음이지만 바순 없으면 오케스트라 불가능
음악을 하면 겸손해져…이해 못하더라도 즐기면 돼
한국음식 비빔밥 좋아하고 악기 중엔 퉁소 꼭 배우고 싶어
눈에 띄지 않고 저음이지만 바순 없으면 오케스트라 불가능
음악을 하면 겸손해져…이해 못하더라도 즐기면 돼
한국음식 비빔밥 좋아하고 악기 중엔 퉁소 꼭 배우고 싶어
만난 사람= 고두현 문화부장
바순(중저음용 목관악기)에 푹 빠진 은발의 외교관.피에르 클레망 뒤비숑 주한 벨기에 대사(61)는 30여년 동안 바순과 함께해온 연주자다. 그는 지난 9일부터 오는 16일까지 서울과 부천,고양에서 펼쳐지는 '유로아시아 체임버뮤직 페스티벌'의 주최자이면서 바순 연주자로 직접 무대에도 오른다. 2008년 부임한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유럽과 아시아 연주자들이 펼치는 음악회를 잇달아 기획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저녁에 독일 지휘자가 전화해서 유로아시아 연주회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 인연으로 연주회를 기획했는데 지휘자와 첼로 연주자,나 이렇게 셋만 유럽 출신이었습니다. 명칭이 유로아시아 연주회였는데 그에 맞게 유럽 연주자가 좀 더 많아야 했죠.올해는 38명 중 유럽 연주자가 25명이나 되니 이름값을 한 셈이죠."
그는 유럽연합 대사관들에 일일이 협조를 요청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각국 연주자들을 뽑았다고 했다. 한국에 오는 경비는 12개 유럽 국가가 지원했다. "유럽의 지원은 의외로 많았는데 아시아 지역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어요. 결국 유로아시아가 아니라 유로코리아콘서트에 가깝게 돼 버렸죠.삼성생명과 우리투자증권,르노삼성자동차,할리스커피 등 6개 기업이 도와줬어요. 내년에는 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
벨기에의 쿼츠앙상블과 왕립음악원 교수도 초청했다. 다양한 곡을 선보이기 위해 7차례 연주회 중 한 번만 같은 프로그램을 하고 나머지는 다른 곡들로 구성했다.
"현대음악도 많이 골랐어요. 첫날 콘서트는 톤이 가벼운 편이었고,둘째날은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연주여서 느낌이 또 달랐죠.쇼팽은 첼로와 피아노곡을 몇 개밖에 작곡하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를 연주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요? 다들 놀라워했어요. 남은 연주도 기대됩니다. "
12일 서울 방배동성당에서 가진 연주회는 벨기에 출신 의사 마리-헬렌 브라서(한국명 배현정)를 위한 자선공연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그 분은 한국에서 38년이나 살았어요. 처음엔 간호사로 왔다가 여기서 체계적인 의료활동을 펼치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고 의사가 됐죠.한국말도 잘해요. "
뒤비숑 대사가 바순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32세 무렵.그 전에는 플루트를 연주했다. 그는 "올해 61세인데 32세까지 플루트를 했으니까 64세까지는 바순을 하지 않을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둘 다 관악기죠.플루트는 외향적이고 다소 뽐내고 싶어하는 악기예요. 바순은 뒤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고 음도 낮지요. 바순이 없으면 오케스트라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악기지만 성격은 내성적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와 잘 맞습니다.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바순을 연주하다 보면 호흡법을 익힐 수 있어요. 그게 건강 비결이기도 합니다. "
그는 "한국 전통 대나무 피리(퉁소)를 좋아한다"며 "아직 연주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꼭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도 음악 마니아다. "아들이 첼로를 배우는데 연습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딸은 성악을 합니다. 그런데 주로 욕실에서만 해요. 하하."
그는 또 벨기에가 올해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은 것을 상기시키며 "음악은 협력과 연대,소통의 다리이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악이든 외교든 잘 듣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도 거기에서 나오죠.오케스트라의 화음 또한 협동에서 나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항상 내가 맞다고 우기면 안 되듯이 외교도 마찬가지죠,공유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요. "
혹시 그도 '잘 듣지 못해' 후회한 일은 없었을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어요. 중동에서 항상 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교류도 잘했습니다. 아라파트나 라빈이나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둘 다 천국에 갔을 거예요. 그들은 오랫동안 의견을 조율하고 협력하고 그런 일을 잘 했잖아요. 그러나 중동의 여러 나라 리더들은 자신만 내세워요. 지금도 테러가 반복되고 있잖아요. 서로에게 배우려는 게 아니라 신에게 언제쯤 이런 분쟁이 끝나나 묻기만 하고 실질적인 해결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음악과 외교는 평화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상대방(적)의 말을 정말 잘 들어야 해요. "
그는 음악을 '언어'라고 표현했다. 그것도 '매우 복잡한 언어'.이론을 앞세우기 전에 음악 자체를 즐기는 게 이 오묘한 언어와 친해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들어서 좋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즐기고 감상하는 게 더 중요하죠.그런데 이번 콘서트에 젊은 관객들이 많이 와서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편하게 즐기는 관객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
독문학을 전공한 그는 "음악을 하면 뽐내는 게 아니라 겸손해진다"고 말했다. "음악 연주자를 등산하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어요. 첫째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날씨가 좋아야 하죠.챙길 것도 많아요. 물도 가져가고 체력도 잘 조절해야 하고 신발도 신경써야 하고….음악도 마찬가지죠.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된 상태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전 그걸 음악에서 느낍니다. 악기를 연주할 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요. 기술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야 합니다. 언어처럼 어떻게 표현할지 자신의 스타일,자신의 향기로 해야지 그런 것 없이 악보만 보고 연주하면 자신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
그는 최근 린덴바움 페스티벌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 함께 연주한 경험을 얘기하며 "그토록 훌륭한 지휘자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다.
뒤비숑 대사는 한국의 템플스테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절에서 정신적인 수양을 해보고 싶어요. 방문한 적은 있지만 템플스테이를 체험하지는 못했죠.매우 정신적이고 영적인 곳이 절입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에 가 봤는데 아주 인상적인 곳이었어요. 불교는 종교이긴 하지만 마음을 수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불교만의 교리가 있지만 참선 등을 통해 마음을 닦고 내면을 비춰볼 수 있으니까요. "
한국음식 중에서 비빔밥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남은 임기 동안에도 그의 장기인 즉흥성을 살려 "기회만 되면 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시도는 무엇이든 신선하잖아요. "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