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은 한때 세계인의 꿈이었다. 중산층 이상으로 끊임없이 도약하려는 미국 서민사회의 역동성과 신대륙으로 건너가 악조건을 이겨내고 성공한다는 것에는 성취감과 풍요,기회와 보람이 깔려 있었다. 낙관과 희망,미래가 그속에 녹아 있었다. '노력해 성취해 나간다. ' 그 결과 누구라도 배고프면 냉장고를 열고 큰 부담없이 휴가계획도 세운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니 자동차연료나 난방비쯤은 걱정거리도 못 된다. 어느 새 인터넷도 손안에 있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편리하고 안락하다.

중산층이면 이 모든 걸 싼 비용으로 누리니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굳이 갈 이유도 없어졌다. 신흥국에서도 중산층 범주에만 제대로 든다면 누릴 수 있는 것, 그렇게 아메리칸 드림은 아메리칸 스탠더드(미국중심의 세계표준)만큼이나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됐다. 말 그대로 꿈이었던 아메리칸 드림은 너무나 빨리 세계인의 일상으로 다가온 듯했다.

그런 아메리칸 드림이 백일몽이 되어 간다. 미국에서 먼저 무너져 내린다. FT는 최근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두 가정과 그들 주변의 경제에 대한 꼼꼼하고 긴 르포로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신기루가 되어가는지를 생생히 소개했다. 2쪽을 가득 채운 기사를 한 마디로 줄이면 '굿바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길게 부연할 것도 없이 중산층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부부연봉 7만달러로 7만3000달러의 주택에 사는 프리만씨 부부가 직장에서 밀려날 경우 버틸 수 있는 저축금은 3주치.5만달러 모기지론으로 산 집값이 한때 10만5000달러로 올랐을 때 이 부부는 생활화된 아메리칸 드림을 즐겼을 만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건은 급변했다. 워싱턴 인근 북버지니아 중상류층 지역의 50대 밀러씨 부부는 장성한 아들 둘과 며느리,손자까지 한 집에 산다. 학생도,직장인도 아닌 아들부부와 동거는 대가족이 좋아서가 아니다. 돈 때문이다. 이 부부의 여러 형제 중 생활비의 양끝(수입 · 지출)을 맞추는 가정은 거의 없다.

미국 가계 아래쪽 90%의 소득이 37년째 제자리 걸음이라고 한다. 고용과 소득 통계에다 집값 추이를 보면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미국인에게 한낮의 꿈이 돼 간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급격히 진행되는 가계자산의 대폭락(great stagnation) 때문이라고도 하고,2008년 이후의 경기침체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는 인플레인지,디플레일지 분간도 안된다. 월가의 최고수들간에도 의견이 극명히 갈리는 게 지금의 경제전망이다. 그만큼 내일의 불확실성은 커져간다. 하긴 어느 쪽이든 급변하는 상황에선 중산층 이하가 더 충격받게 돼 있다.

이 와중에도 경기 낙관론자든 '닥터 둠'이든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고용불안이 좀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실업으로 구인이 구직보다 절대우위가 되는 시대,중간계층의 소득향상은 기대 난망이다. 실업률이 높다는 것은 비전문 노동력,곧 '보통의 사람값'이 다른 무엇보다 싸다는 의미다.

중산층 붕괴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 45년 만에 '마이 카'가 줄어든다는 소식을 보면 그쪽도 그렇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청년실업,베이비부머 노후문제,양극화 심화,30~45세 샌드위치 세대의 좌절 같은 숙제들도 중산층 몰락이라는 기둥에서 나온 가지일 뿐이다. '굿바이 아메리칸 드림'은 역사상 짧게 형성된 중산층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제 국가 간 진짜 경쟁도 중산층 만들기에서 판가름나게 됐다.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