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 태평양지역 대학들의 공동교육 프로그램인 '아시아 태평양 리더(APL) 프로그램'이 제1기 수료식을 마친 지난달 30일 학생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유럽 대학 협력체인 유럽국제교육협회(EAIE),미주지역 대학들의 모임인 국제교육기관협회(NAFSA)와 함께 세계 3대 고등교육 협의기구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태평양국제교육협회(APAIE)가 '아시아판 에라스무스'를 목표로 출범시킨 APL은 회원국 대학을 자유롭게 옮겨다니며 수업을 듣고 학점을 인정받는 제도다. 한국을 포함해 아 · 태지역 1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출범 첫해인 올해 한양대에서 열린 과정에는 11개국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7월 한 달간 아 · 태지역의 역사 · 문화 · 경제 · 산업 · 시사 현안과 리더십 강의를 들었다. 청와대와 국회,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현장학습 기회도 가졌다. 한 달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6학점씩 취득했으며 APL협약에 따라 소속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았다.
APL 1기 수료생들은 분기에 한 번씩 자신의 근황과 자기 나라의 정치 · 사회 이슈를 모아 뉴스레터를 만들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교류를 이어가기로 했다. 1기 부학생회장으로 뽑힌 로라 오루크(23 · 호주 던킨대 법학과)는 "호주가 다른 아 · 태지역 국가와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점과 역사 · 경제적으로도 상호 의존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뿌듯해했다. 기업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그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을 인터뷰했던 일이 제일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하와이대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하는 브리트니 벅홀더(21)는 이번 과정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아버지와 값진 추억도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전직 공군 조종사로 딸의 한국행을 계기로 50여년 만에 '코리아'를 다시 찾았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왔다"며 "한국이 분단국가이고 내 아버지가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서머스쿨 형태의 단기 교육과정으로 운영된 제1기 APL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아 · 태지역 '국경없는 캠퍼스'가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참여 대학들이 별도의 양자협약 없이도 학점과 학위를 인정해주고 있다. APL이 정규 교육과정까지 확대되면 호주 그리피스대에서 1학년,중국 런민대에서 2학년,한국 고려대에서 3학년,일본 와세다대에서 4학년을 각각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아 회원 대학들로부터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학생들을 지도한 이두희 APAIE 회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향후 공동 학점 인정의 규모와 폭,시기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더 많은 아 · 태지역 학생들이 참여해 글로벌 마인드를 쌓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대학들이 자국의 우수 강의를 APL 학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