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박삼구 회장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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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 고(故) 박인천 회장의 일대기인 '집념'을 쓴 사람은 진보 성향의 소설가 · 영화감독 이창동씨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 같은 사회고발 소설을 쓰고 영화를 제작해 온 그가 왜 '재벌 기업가'의 삶을 글로 담아냈을까. "그의 일생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만만치 않은 역사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었다.
1946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택시 두 대로 사업을 시작,승부욕과 성취를 향한 열망으로 숱한 시련과 좌절을 극복해낸 과정이 지연 · 학연 · 혈연 어느 것 하나도 닿지 않은 진보 지식인의 탐구욕을 자극한 것이다.
8년 전 그룹경영을 승계한 박삼구 회장은 '집념'의 DNA에 '스킨십 경영'을 보태면서 금호아시아나의 전성기를 일궜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이 초유의 장기 파업을 벌이면서 노-노 갈등이 불거졌을 때,임직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그의 스킨십 경영은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작년 초 아시아나가 '국제 항공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ATW상을 받을 정도로 저력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년을 해외에서 맞는 대신 직원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직원들이 진심으로 나를 반겨줄 때 기업하는 맛,보람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그의 말엔 최신 경영학 이론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다. 주주,고객을 만족시키기에 앞서 '내부고객'인 종업원을 감동시켜 조직역량을 최고조로 유지하는 것이 기업 성공의 최우선 요체라는 이론 말이다.
금호그룹이 요즘 또다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재무구조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가운데 경영 정상화를 지휘할 사령탑마저 부재(不在)상태에 빠져들었다. 박 회장은 경영위기 와중에 빚어진 형제간 경영권 갈등의 책임을 지고 1년 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고,그 자리를 물려받았던 전문경영인 출신 박찬법 회장도 건강을 이유로 지난주 사임했다.
금호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탓이지만,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불똥을 맞은 게 결정적이었다. 한국 기업과 경제에 대해 '까칠한' 보도를 하기로 이름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올초 금호그룹의 재무위기를 보도하면서 "(타이밍이 안 좋았던) 대우건설 인수 전까지 금호는 사회봉사와 예술 후원에 적극적인,화려하지 않지만 실속 있고 안정된(low-profile) 기업그룹이었다"고 코멘트했을 정도다.
금호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재무위기의 충격을 딛고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상반기 비수기임에도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렸고,노사 갈등의 환부를 도려낸 금호타이어는 일감이 3개월 이상 밀려 있다.
고비는 이제부터다.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언제까지 회생의 모멘텀을 살려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내상(內傷)을 입은 임직원들의 마음을 다독여 내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 사령탑의 '스킨십'이 가장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그룹의 구심점으로 복귀해 다시 한번 금호 전체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주주의 '책임'은 없다. 채권단도 금호를 제대로 살려낼 최적임자가 누굴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팬택은 워크아웃 이후에도 오너였던 박병엽 부회장에게 계속 경영을 맡겼고,그의 전력투구에 힘입어 기사회생의 드라마를 써 나가고 있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1946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택시 두 대로 사업을 시작,승부욕과 성취를 향한 열망으로 숱한 시련과 좌절을 극복해낸 과정이 지연 · 학연 · 혈연 어느 것 하나도 닿지 않은 진보 지식인의 탐구욕을 자극한 것이다.
8년 전 그룹경영을 승계한 박삼구 회장은 '집념'의 DNA에 '스킨십 경영'을 보태면서 금호아시아나의 전성기를 일궜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이 초유의 장기 파업을 벌이면서 노-노 갈등이 불거졌을 때,임직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그의 스킨십 경영은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작년 초 아시아나가 '국제 항공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ATW상을 받을 정도로 저력을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년을 해외에서 맞는 대신 직원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직원들이 진심으로 나를 반겨줄 때 기업하는 맛,보람을 가장 많이 느낀다"는 그의 말엔 최신 경영학 이론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다. 주주,고객을 만족시키기에 앞서 '내부고객'인 종업원을 감동시켜 조직역량을 최고조로 유지하는 것이 기업 성공의 최우선 요체라는 이론 말이다.
금호그룹이 요즘 또다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재무구조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가운데 경영 정상화를 지휘할 사령탑마저 부재(不在)상태에 빠져들었다. 박 회장은 경영위기 와중에 빚어진 형제간 경영권 갈등의 책임을 지고 1년 전 명예회장으로 물러났고,그 자리를 물려받았던 전문경영인 출신 박찬법 회장도 건강을 이유로 지난주 사임했다.
금호가 어려움에 빠진 것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탓이지만,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불똥을 맞은 게 결정적이었다. 한국 기업과 경제에 대해 '까칠한' 보도를 하기로 이름난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올초 금호그룹의 재무위기를 보도하면서 "(타이밍이 안 좋았던) 대우건설 인수 전까지 금호는 사회봉사와 예술 후원에 적극적인,화려하지 않지만 실속 있고 안정된(low-profile) 기업그룹이었다"고 코멘트했을 정도다.
금호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재무위기의 충격을 딛고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상반기 비수기임에도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렸고,노사 갈등의 환부를 도려낸 금호타이어는 일감이 3개월 이상 밀려 있다.
고비는 이제부터다.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에서 언제까지 회생의 모멘텀을 살려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내상(內傷)을 입은 임직원들의 마음을 다독여 내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 사령탑의 '스킨십'이 가장 필요한 때가 지금이다. 그룹의 구심점으로 복귀해 다시 한번 금호 전체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주주의 '책임'은 없다. 채권단도 금호를 제대로 살려낼 최적임자가 누굴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팬택은 워크아웃 이후에도 오너였던 박병엽 부회장에게 계속 경영을 맡겼고,그의 전력투구에 힘입어 기사회생의 드라마를 써 나가고 있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