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사는 2005년 3월 노동조합원인 직원 이모씨(58)의 근무태도 및 지시 불이행 등을 문제 삼아 징계해고했다. 이씨는 회사의 부당한 인사 발령과 감시 때문에 적응장애 등 병이 생겼다는 이유로 해고 전인 2004년 말부터 요양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후 이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자 중노위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2007년 서울고법은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중인 노조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한 D사의 단체협약을 근거로 이씨의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자 D사는 이씨를 복직시키는 인사를 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의 조직에는 변화가 있었다. 해고 전 이씨는 직영승용판매부문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D사는 이씨가 해고된 지 1년 후인 2006년 직영승용판매부문 등을 분리,별도 회사를 새로 세우고 분할등기를 마쳤다. 신설회사에서 근무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힌 근로자 200여명에 대해 D사는 일단 보직 대기발령을 내렸다. 다른 근로자들처럼 근무를 거부한 이씨 또한 복직 후 바로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D사는 "과거 이씨의 직책이 신설사로 옮겨진 상황에 비춰볼 때 대기발령을 한 이상 이씨는 사실상 복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씨는 "대기발령은 원직 복직이라고 볼 수 없다"며 D사를 상대로 원직 복귀 시까지 정상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등의 소송을 냈다.

1심은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는 "신설 회사로 분할된 부문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근로 관계는 원칙적으로 신설 회사에 포괄적으로 승계되지만,이를 거부하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예외"라고 봤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이씨가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 해도 회사 분할 당시 다른 근로자들처럼 대기발령을 받았을 것"이라며 D사의 대기발령이 원직 복직과 같다는 원심(2심)을 모두 받아들였다.

원심은 '회사가 해고했던 근로자를 복직시키면서 종전과 다른 일을 시켰다 해도 이는 사용주의 고용 권한인 경영권의 범위에 속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이씨의 대기발령(2007년 11월) 이후에는 정상 임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해당 기간에 D사가 이씨에게 보직대기자로서의 임금만을 지급해온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씨는 해고 다음 날부터 대기발령 전일까지 기간에 받을 수 있었던 임금 등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D사에서 지급받게 됐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