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이번엔 통할까.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기 전경련 회장직 수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재계의 실질적 리더인 이 회장을 반드시 추대해야 한다는 경제계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한 15명의 전경련 회장단이 서울 한남동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집무공간인 승지원에서 만찬회동을 갖는 것도 절묘한 타이밍이다.

전경련은 이 회장과 함께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 회장도 유력한 추대 후보로 올려 놓고 회장단의 견해를 정리하고 있다. 정 회장 측이 일단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 측과의 만남이 먼저 마련되면서 차기 회장 선임작업이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이 회장의 수락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 회장의 전격적인 수락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은 "자신이 초청한 자리에서 회장단의 간곡한 요청을 굳이 거절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반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이들은 이 회장이 산적한 경영 현안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업무까지 챙기고 있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처한 입장을 설명하면서 (회장직을 맡지 못하는 데 대한) 양해를 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대 관건은 외부 여건이나 추대 분위기가 아니라 이 회장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과거 전경련 회장 선임문제로 이 회장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 재계의 한 인사는 "이 회장은 전경련을 창설한 선대 이병철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언젠가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지금이 그 시점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실제 이 회장은 2007년 2월 신임 회장 선임을 위한 전경련 총회를 앞두고 자신을 추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찾아온 강신호 당시 전경련 회장 등에도 딱 부러지게 거절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강 회장 일행이 승지원을 나설 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이 회장은 삼성에 중대한 경영현안들이 많았던 데다 불편한 대정부 관계 등을 감안해 끝내 고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에도 이 회장이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참석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수준에서 자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전경련 차기 회장 추대작업은 이달을 넘길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고사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특정인을 추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007년 초 조석래 현 회장이 여러 차례 진통을 겪으며 추대될 때도 당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강력하게 조 회장을 천거해 정리된 적이 있다.

다만 승지원 만찬에 유력 후보인 정몽구 회장과 4대그룹의 일원인 LG 구본무 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만큼 4대그룹 총수를 후보에서 배제한 채 얼마나 실효성있는 논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전경련 회장직은 '원한다고 할 수도 없고,하기 싫다고 물리칠 수도 없는'자리라는 얘기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처럼 확고한 위상과 글로벌 경영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 차기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게 회장단의 일치된 뜻"이라고 강조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