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월드컵 B조 예선경기가 열린 지난달 12일,경기장 안 A보드 광고판에 등장한 것은 월드컵 공식 스폰서인 버드와이저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맥주인 '킬메스'였다. 독일-호주 전에는 독일의 '하서뢰더'가,북한과 브라질 경기에선 브라질의 대표 맥주 '브라마'가 광고판에 각각 등장했다.

어떻게 버드와이저 대신 각 출전국의 대표 맥주 브랜드가 광고판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들은 한결같이 모두 버드와이저를 소유한 벨기에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에 속한 브랜드기 때문이다.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판매량 기준 세계 10대 맥주 브랜드 중 4개(버드와이저,버드라이트,스콜,브라마 촙)를 보유한 세계 1위(시장점유율 25%) 맥주회사다. 연간 매출이 10억달러 이상인 브랜드만 13개에 이른다.

2009년 4분기 매출이 2년 전 동기 대비 100.5%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16.8%에 그쳤던 같은 기간 세계 맥주업계 평균 매출 증가율을 6배 가까이 웃돌았다. 영업이익률도 26.7%로 업계 평균(11.4%)의 두배가 넘었다. 비결은 과감한 인수 · 합병(M&A)과 이를 통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대에 있었다. 위기 때 과감히 비주력사업을 정리하는 결단도 높은 성장을 뒷받침했다.

◆끝없는 M&A가 반복된 성장의 역사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2008년 11월 세계 2위 맥주회사인 벨기에의 인베브가 3위인 미국의 안호이저부시를 인수하면서 탄생했다.

인베브의 전신은 1987년 설립된 인터브루로,벨기에 맥주회사인 아트로와와 피에드보에프가 합병해 출범했다. 당시 벨기에의 작은 맥주업체에 불과했던 인터브루는 1995년 캐나다 맥주업체 라바트 인수를 시작으로 글로벌 M&A를 본격화했다.

1998년 국내 업체인 두산으로부터 오비맥주를 인수하고 2004년에는 브라질 맥주업체인 암베브를 합병하면서 영향력을 아시아와 남미로까지 확대했다. 이후 2004년 하얼빈맥주를 사들이고 2006년 푸젠세드린을 인수하며 중국 시장에도 발을 들여놨다.

이 회사는 해당 국가의 상위 5위 이내 업체를 골라 M&A 타깃으로 삼는다. 인수 비용부담은 크지만 장기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갖추는 것이 득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버드와이저를 갖고 있는 미국의 안호이저부시,스콜과 브라마를 소유한 브라질 암베브,아르헨티나의 킬메스,중국의 하얼빈맥주 모두 현지시장에서 1위 또는 최소 상위 5위권에 드는 맥주업체였다.

◆200개에 달하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자사의 프리미엄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나갔다. 보유하고 있는 맥주 브랜드만 전 세계적으로 총 200여개에 달한다. '글로벌 브랜드'인 버드와이저,스텔라 아르투아,벡스,레페,호가든을 비롯해 국가대표급 브랜드인 버드라이트,킬메스,하얼빈,코로나,주필러 등이 모두 이 회사에 속해 있다.

이 회사의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빛을 발했다. 경기침체 여파로 서유럽 맥주 판매가 저조했던 때였다. 맥주산업 전문기관인 플라토 로직에 따르면 '맥주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벨기에 독일 등 서유럽에서 지난해 맥주 판매량은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이에따라 이 회사의 서유럽 판매량도 5% 줄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신흥시장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서유럽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스콜과 브라마를 적극 홍보해 현지 시장 점유율을 70%로 끌어올렸다. 브라질 내 매출(12.7%)과 총수익(16.1%) 모두 두 자릿수 증가한 덕분이다.

안호이저 부시를 인수하면서 확보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버드라이트의 선전으로 북미지역 총수익도 5.4% 늘어났다. 아시아에서는 중 · 저가 전략이 먹혔고 중국에서는 하얼빈맥주와 버드와이저 판매 호조로 총수익이 6.2% 증가했다.

"인베브는 합병 후 신흥 시장과 북미에서의 매출 급증세를 바탕으로 수익성이 탄탄한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월 스트리트 저널)는 평가가 이어졌다.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2008년 4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95%나 감소했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 부진과 안호이저부시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520억달러의 부채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즉각 인원 감축과 공격적인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2008년 12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에서 1400여명을 감축했다.

이어 지난해 5월 오비맥주를 미국의 사모투자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츠 로버츠(KKR)에 매각,18억달러의 현금을 마련했다. 이는 거래완료시점인 그해 3분기 한국 M&A 시장에서 최대 규모였다. 인베브는 오비맥주를 매각한 데 대해 "안호이저부시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비맥주의 실적이 부진함에 따라 더 가치 있는 브랜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파이낸셜 타임스)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비맥주 매각 후에도 한국에서 버드와이저와 호가든 등의 마케팅을 지속한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구조조정과 자금확보 노력 덕에 이 회사는 1분기 만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순익이 7억1600만달러로 전년 동기(3억7300만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합병 1년 뒤인 지난해 3분기에는 순익 15억4600만달러로 합병 전 인베브(6억9000만달러)와 안호이저부시(6억6600만달러)의 순익 합계를 넘어섰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 회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10%가량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익은 늘어났다"며 "합병 이후 공격적인 자산 매각을 통한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비용절감 등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회사는 또 지난해 말 미국 내 2위의 놀이공원인 부시 엔터테인먼트를 23억달러에 매각하는 등 유동성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칼로스 브리토 최고경영자(CEO)는 "테마파크는 실적이 좋지만 그룹의 핵심사업은 아니다"며 "현금 확보를 통해 맥주 브랜드를 더 다양화하고 고급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