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부와 민간부문을 합쳐 과학기술 관련 국가 총 R&D 투자규모가 34조5000억원(2008년)으로,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중이 3.37%다. 이는 세계 3위 수준으로 2012년까지 이 비중을 5%로 높여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부 R&D 투자를 2008년 11조1000억원에서 올해 13조7000억원으로 증액했고,2012년에는 20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 R&D 투자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강한 의지에 비해 국가 R&D 경영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정부 R&D 예산에 대한 효율적 투자배분과 관리를 담당하는 소위 '컨트롤 타워' 기능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올해 13조7000억원의 배분은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각각 4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고,다음으로 방위사업청 1조8000억원,국토해양부 5800억원,중소기업청 5600억원 등이다.

그러나 예산 집행에서 범부처 연계 · 협력 사업의 공동 기획 및 추진이 미흡하다. 예를 들면 정부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녹색기술개발 투자에서도,또한 지방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사업에서도 부처간 협력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외형적으로는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조정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교과부 과학기술정책실의 정책조정기획관이 사무국장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교과부 이외의 다른 부처까지 원활히 조율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독립된 상설사무국을 두고 교과부와 관련이 없는 장관급 책임자를 배치, 현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청와대에 과학기술 수석을 두거나 내각에 과학기술 담당 무임소장관을 임명하자는 얘기다. 이전 정권에서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하고 그 산하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두어 정부의 모든 부처 R&D를 조정하는 기능을 부여한 바 있다.

둘째, 6월1일 지경부는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을 발족하고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단장으로 임명했다. 전략기획단은 첫 회의에서 지경부의 현행 R&D 투자에 대한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황 단장은 순수 기술개발 분야 비중을 낮추고,기술의 상용화에 역점을 두며 국제협력,사업화,표준화 비중을 확대하고 유일기술,융 · 복합기술 등의 개발에 우선권을 두겠다고 했다. 이런 취지는 황 단장이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예상됐던 방향이나 큰 틀의 정부 R&D 투자 방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기술의 상용화는 정부보다는 기업의 몫이다. 정부는 긴 안목에서 기업이 하기 어려운 기초원천기술이나 창조적 기술 개발에 연구비를 주로 지원해야 한다. 국가 R&D 경영의 차원에서 전략적인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지경부의 입장에서 국제협력,표준화,융 · 복합기술 개발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 초기의 강한 정부 R&D 투자의지가 퇴색돼 가는 것이 염려된다. 세종시 문제로 국가의 장기적 R&D 투자계획인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속절없이 고사돼 가고,사회복지 관련 예산의 확대로 2012년에 목표로 하고 있는 20조원의 정부 R&D 투자 계획이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의 R&D 투자가 늘어나야 민간부문의 R&D도 확대될 것이며,결국에는 2012년에 애초 계획했던 GDP 대비 5% R&D 투자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R&D 투자를 더욱 과감히 이끌어 나가길 기원한다.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 /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