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케이블 방송채널 사업자(PP)들은 영세하기 이를 데 없다. 2008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는 곳은 16곳에 불과하다. 매출 50억원 미만도 101개(56%)에 이른다. PP들이 영세하다보니 콘텐츠 제작 역량을 키우기는커녕 저가 콘텐츠 수급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는 방송사업자들의 수익을 뒷받침해주는 시장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턱없이 낮은 방송수신료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미디어 키우자] (3) 케이블 방송 수신료 필리핀보다 낮아…가급적 빨리 현실화해야
시장조사 기관인 미디어파트너스에 따르면 국내 케이블TV 가입자의 평균 수신료(2008년 기준)는 7.5달러에 불과하다. 미국 방송수신료(69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인도네시아(22달러) 필리핀(12달러)에 비해서도 절반밖에 안된다.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유료 방송을 시청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유료 방송시장을 황폐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진경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미디어지원국장은 "낮은 방송수신료는 PP들의 수익기반을 악화시켜 양질의 방송콘텐츠를 만들기 어렵게 하고 이는 소비자들이 질좋은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료 방송시장의 저가 수신료 구조는 방송사업자들이 서비스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에 매달린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초기부터 지상파 방송을 단순 재전송하는데 그치다보니 소비자들에게 '방송=공짜'라는 인식을 심어줘 제값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케이블TV가 출범했던 1995년에는 방송수신료가 월평균 1만5000원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 등을 단순 재전송하던 중계유선사들과의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케이블TV의 방송수신료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경쟁 유료방송 매체인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개국한 2002년에는 방송수신료가 월평균 4187원으로 8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케이블TV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던 2003년에는 방송수신료가 월평균 3776원까지 낮아졌다.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월 6000원대를 회복했지만 외국에 비해서는 아직도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게다가 최근에는 KT SK브로드밴드 LG텔레콤 등 통신사들의 인터넷TV(IPTV)들과 케이블TV 간 가입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방송 · 통신 결합상품을 팔며 방송수신료를 낮추는 가격인하 경쟁이 재연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PP들의 수익기반을 강화할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케이블TV들에 재승인 조건으로 방송수신료 매출의 25% 이상을 PP에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월 6000원인 평균 방송수신료 중 170여개 PP들에 돌아가는 몫은 1500원에 불과하다. 지상파 계열 PP들의 지배력을 감안하면 중소 PP들에 돌아가는 몫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국내 PP들은 유료 방송 채널인데도 매출의 8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콘텐츠 제작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지상파 3사의 콘텐츠 제작 투자비는 1조7000억원이었지만 케이블 PP 전체의 콘텐츠 제작 투자비는 1600억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방송수신료 하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준호 숙명여대 교수는 "수신료 인하경쟁은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 유료 방송사들이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며 "지나치게 방송수신료를 낮출 수 없도록 가격하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