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방송가에선 때아닌 엽기소품 논란이 벌어졌다. SBS드라마 '토지'에서 소품으로 쓰인 여우 생식기가 강아지 성기 삶은 것이란 얘기가 나온 게 화근이었다. 동물 학대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제작진은 시중 한약재인 '강아지 성기 말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굳이 보여줘야 했느냐는 비판을 면치 못한 여우생식기는 귀녀(최참판집 하녀)의 신분상승 욕구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최치수를 유혹,안방마님이 되고 싶던 귀녀는 그걸 갖고 있으면 남자가 쉽게 다가온다는 소문에 강포수에게 부탁해 여우생식기를 구한다. 그러나 부적은 소용없고 귀녀의 열망은 수포로 돌아간다.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시골형사' 박두만(송강호) 역시 다르지 않다. 범인을 잡기 위해 무당에게 값비싼 부적을 사들이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귀녀와 박두만의 실패에도 불구,부적은 현실 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사내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몸에 지니면 재수 있다는 말에 수능시험 때면 싫다는 아이의 몸에 억지로 둘러주는 엄마들도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효험이 있다는 얘기에 설마하면서도 솔깃하는 것이다.

부적(符籍)은 재앙을 막고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도구다. 붉은 색 종이에 글씨나 기호를 쓴 게 많지만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나 대추나무를 이용하기도 하고 돌이나 바가지로도 만든다. 보통은 집안에 붙이거나 이부자리 등에 넣고 몸에 지니지만 불살라 마시기도 한다.

수입 금지된 여우 생식기를 몰래 들여와 부적으로 판매하려던 사람이 적발됐다는 소식이다. 주부들은 바람난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에,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은 손님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에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샀다는 말도 들린다.

부적에 기대는 건 불안 때문이다. 2008년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3%가 업무상 답답할 때 점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최근 알바몬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67.5%가 '점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괘가 나쁘면 불안은 가중되고 두려움은 더 커진다.

회사 일이고 연애고 잘 안풀린다 싶을 때 곰곰이 생각하면 해답은 자신에게 있다. 초조할수록 문제의 원인을 잘 파악,부족한 건 채우고 버릴 건 버려야 밤낮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