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변수로 '정책 리스크'가 떠올랐다. 정치권의 정쟁(政爭)에 따라 갈지자(之) 행보를 거듭하는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기업과 가계가 고통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시다. 정부가 강요하다시피 기업들을 설득해 마련한 세종시 수정안은 22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부결됐다. 수정안이 부결됐으면 기업들은 투자계획을 백지화하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원안대로 가도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안한 표정으로 되묻고 있다. 기업의 생명은 투자 타이밍인데,세종시에 볼모로 잡혀 아무것도 못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투자지역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라는 것인지,행정도시로 바뀌더라도 계속 투자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지방선거 결과 장(長)이 바뀐 곳에서 전임 단체장이 추진한 사업이 중도 하차하거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인천시의 경우 송도경제자유구역 투자전략과 개발사업에 대대적인 손질이 가해질 전망이다. 경기도 의정부시는 공사가 이미 70% 진행된 경전철 사업이 중단 위기다. 이로 인해 관련 기업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정책이 수없이 바뀌다 보니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시장이 대표적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주택 보유자들은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물을 내놓지 않고,매수자들은 정부의 추가 완화책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집을 살 생각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부동산 거래가 자취를 감춘 것은 정책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쟁으로 주요 정책이 잇따라 뒤집어짐에 따라 향후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마저 추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투자개방형 영리의료법인 도입,전문자격사 진입 규제 완화,공기업 개혁 등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고 말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 경제의 근본 체질을 바꿔 성장잠재력을 키우겠다는 현 정부의 출범 초기 공약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유혹에 정부가 쉽게 빠져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과제가 사라지고 달콤한 정책들만 먹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정책을 결정할 때 제대로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추진한 정부나 룰을 밥먹듯이 무시하는 정치권의 후진적 행태 모두가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을 힘들게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일관성을 유지하며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반대 주장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할 때는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