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데 2%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스와의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면서 그 실체가 무엇인지 단서가 잡히는 듯했다. 축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한국이 과거의 패러다임대로 선수들의 투지와 부지런함에만 의존하는 경기를 벌였다면 아마 유럽축구의 벽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수들의 기술과 집중력이 그리스를 완파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성실함이 우리나라의 근로문화를 대변한다면 업무시간 중에는 몰입하는 대신 여가는 철저히 즐기긴다는 게 선진국 근로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실함이 우리나라를 짧은 시간에 빈곤에서 탈출하게 했지만 이것만으론 선진국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일하는 데 시간 투입은 많이 하지만 성과는 적은 고비용 · 저효율 근로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기업 경쟁력은 물론 근로자들의 행복지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 한계에 부딪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근로시간이나 생산성 문제는 경영자와 근로자들의 의식과 직결되고 가정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더군다나 지난 10여 년간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계에는 임금소득 보전 문제가 됐고,경영계엔 인건비 증가 요인이 되면서 노사 상생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새로운 근무형태를 개발하는 과제도 노동계는 고용불안 유발로 보는 반면,경영계는 노동시장 규제 확대 문제로 보면서 말만 무성한 이슈가 됐다.

근로시간이나 근무형태를 둘러싼 논쟁은 변화에 따른 위험 감수냐 아니면 발전을 위한 기회 활용이냐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노 · 사 · 정은 근로시간 · 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 근로시간을 향후 10년 이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하고,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근무형태를 개발하며,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는 임금제도로 개선한다는 데 합의했다. 여기에는 인적자원을 보다 소중히 개발 활용하고 급격히 진행되는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사무나 영업,연구개발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데 비해 기존의 근로시간제도는 제조업과 생산직의 근로형태에 초점을 두다 보니 업무 특성에 맞는 새로운 근무관행을 만들기 어려웠다. 또한 장시간 근무관행은 가사의 부담이 큰 여성이나 고령화된 노동력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인적자원의 효과적 활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노 · 사 · 정 합의가 실천에 옮겨지려면 직장생활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 장시간 근로관행을 바꾸기 위해 근로자들은 휴일휴가를 취지대로 사용하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 노동력의 충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는 업무혁신을 통해 불필요한 일거리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상생의 노사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도 새로운 근로문화 형성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근로시간의 양보다는 질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저출산 및 노동력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가정과 직장 생활의 양립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무형태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는 노사가 사업의 특성과 근로자들의 인적 속성에 맞는 다양한 근무 형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직무 중심의 채용 및 급여 관행 확립 등 근로문화 선진화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축구 강국들이 벌이고 있는 월드컵과 경제 강국들이 모이는 11월의 G20정상회의가 근로문화를 선진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