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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창근 칼럼] 포퓰리즘 덫에 걸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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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급식은 정치적 기회주의
    수월성 부정해서는 미래없어
    다수 민중을 내세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정치행태가 포퓰리즘(populism)이다. '대중영합주의'로 통하는 이 말은 19세기 말 옛 제정러시아를 휩쓴 '브나르도(인민 속으로)'운동과,미국에서 농민과 노조세력이 결성했던 인민당(People's Party)이 정치철학으로 삼은 이후 하나의 사조(思潮)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민당은 공화 · 민주 양대 정당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정책들을 내세웠다.

    미국 인민당은 얼마되지 않아 소멸됨으로써 실패한 정치실험으로 끝났지만,그들이 주장했던 철도 · 전신 · 전화의 공영화,누진소득세 부과,상원의원 직접선거,여성참정권 등은 20세기 초 대부분 실현됐다. 공익적 포퓰리즘이 사회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포퓰리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대개의 경우 정치인들이 권력을 얻기 위한 사익(私益)의 목적으로 국민을 끌어들였던 탓이다. 이를 위해 엘리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고 일반 대중을 충동시키는 데 몰두한다. 결국 포퓰리즘은 감성자극적 정치이고,뚜렷한 이념과 가치에 충실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유리한 길만 찾는 정치적 기회주의가 그 실체인 것이다. 선거과정에서는 정책의 합리성이나 경제논리에 어긋나는 선심공약이 남발될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후 아르헨티나를 쇠락으로 내몬 페로니즘(Peronism)이나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 재정파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그런 정치행태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필연이다. 포퓰리즘이 낙인 찍힌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때 여론몰이에 동원되는 다수 민중은 결코 정치적 리더십의 주체가 될 수 없고,민심을 핑계 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민중을 빙자한 '빙민(憑民)주의'가 포퓰리즘의 진짜 의미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포퓰리즘에 휘말리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것도 그렇지만,교육의 최고책임자를 선거로 뽑는다고 할 때부터 예고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선거는 현대 정치의 상징이고,정치에서 포퓰리즘보다 강한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슈였던 무상급식만 해도 그렇다. 진보진영은 교육경쟁력과 무관하고 화급하지도 않은 이 사안을 첫째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초 · 중 · 고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친환경 식단으로 공짜점심을 주겠다고 했다. 보수 쪽에서는 교육예산을 몽땅 쏟아부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우선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부터 지원하자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 아이 잘 먹이겠다는 걸 싫어할 학부모들이 누가 있겠는가. 감성을 자극하는 이런 구호야말로 정치적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여기에 합리성이나 효율을 따지는 실용적 정책논리,이성적 토론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진보 교육감들이 평등과 평준화를 최고선으로 삼아 심지어 자신의 아들 딸들을 보낸 자율 · 특목고 확대,학력진단평가 등에 반대하는 것도 정치적 포퓰리즘이기는 마찬가지다. 옳은 방향이냐 아니냐를 떠나 엘리트주의의 부정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바람직한 정책은 사회적 필요를 중시하고 효율을 추구함으로써 합리성을 확보하지만,포퓰리즘은 지지집단의 요구,공평성에 매몰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교육의 가치야말로 이 같은 정치적 포퓰리즘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핵심 요소가 교육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획일보다는 자율과 다원성,평준화보다 수월성이 존중되고 경쟁을 통해 글로벌 엘리트를 키워내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자 그동안의 우리 교육에 대한 반성이다. 무엇보다 교육의 판이 정치적 기회주의에 의해 흔들리는 것 자체가 위기다. 이 나라 교육의 역주행이 정말 걱정스러운 이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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