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직장인 김준성씨(30)는 지난해 말 새로 최고경영자(CEO)가 부임하면서 연일 야근행진이다. 기획팀에서 일하는 그는 보고서 작성과 관련 부서 업무지원 등으로 보통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고 새벽 1시가 돼서야 귀가하는 날도 빈번하다. 김씨는 "지난해 결혼했지만 신혼재미를 제대로 못 느껴봤다"며 "맞벌이 하는 아내도 퇴근이 늦어 2세 계획은 꿈도 못 꾸고 있다"고 푸념했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1.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이 같은 저출산의 여러 요인 중 장시간 근로 관행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외에도 장시간 근로는 낮은 생산성으로 근로의 질을 저하시키고 일자리 창출 기반을 약화시키는 등 삶의 질 선진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노동계와 경영계,정부는 연간 2000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을 10년 내에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인 1800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주 단위로 환산하면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5시간 줄어드는 셈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 ·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개선위)는 8일 제7차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과 근로문화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채택했다. 개선위는 장시간 근로개선,다양한 근로형태 개발,임금제도 및 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작년 6월 발족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노 · 사 · 정은 2020년 이전에 국내 전 산업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기 위한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추진키로 했다.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상용직 근로자 기준)은 2007년 2316시간,2008년 225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파트타임 등 모든 근로자를 포함시키는 OECD 기준으로 산출해도 2050시간이며 이는 OECD 평균(1764시간)보다 300시간가량 많다. OECD 회원국 중 연평균 근로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국가는 한국과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2120시간)뿐이다.

노 · 사 · 정은 또 근로문화를 개선하고 양질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리기로 했다. 양질의 파트타임이란 전문적인 업무를 맡는 상용직에 가까운 시간제 근무형태로 최근 시행 중인 유연근무제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개선위 측은 설명했다. 김태기 위원장은 "네덜란드 등 유럽은 전체 근로자 중 파트타임 비중이 30% 이상으로 일반화됐지만 한국은 10% 미만으로 매우 낮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사는 임금을 생산성,직무 등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체계로 전환하는 등 고용친화적 임금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양질의 파트타임에 적합한 직무 및 임금체계를 개발해 근로자가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협력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조건과 관련한 체계적인 조사 및 통계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근로시간을 줄이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진단 및 무료 컨설팅 등을 지원키로 했다.

정현옥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은 "이번에 합의한 내용을 올 하반기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들은 연장근무와 야간근무 등 불요불급한 업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합의는 장시간 근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