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부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먼저 게임 참가자들은 게임머니로 게임판 위에 그려져 있는 몇몇 나라의 땅을 똑같이 나누어 산다. 그런 다음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에 따라 자기 영역을 지나가야 하는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통행료를 받는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누가 더 큰 돈을 벌었는지로 승패를 가렸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놀곤 했는데 예를 들어 일찍 파산한 친구는 게임머니가 많은 친구에게서 돈을 빌렸다가 갚을 수 있게 했다. 그랬더니 한번은 파산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내가 거꾸로 파산 위기에 몰리는 일이 생겼다. 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갚을 돈이 없던 그 친구는 다른 친구한테도 돈을 못 빌리게 되자 자신의 땅을 헐값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게 됐다. 위의 경험은 국가신용이나 환율 개념 등이 반영돼 있지 않은 단순한 게임이었지만, 서로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외채의 중요성과 만기의 의미 등을 실감하게 했던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현실의 우리나라를 보자.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빌린 돈, 즉 외채는 어느 정도이며, 그 구조는 과연 건전한가? 지난 25일 발표된 대외채권채무 통계에 따르면 2010년 3월말 현재 총외채는 4천98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외채의 비중은 37.7%였다. 지난해 동월말 40.3%였던 단기외채 비중이 2.6%p나 하락해 외채의 만기구조는 양호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주요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을 A2에서 A1으로 상향조정한 데는 이와 같은 이유도 반영됐을 것이다. 그러나 총외채 규모 증가와 함께 단기외채 규모도 2009년 3월말 1천472억달러로 저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 3월말에는 1천546억달러로 늘어났다. 단기외채의 증가에는 외은지점의 영향이 크다. 단기외채에서 외은지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44.4%에서 47.9%로 높아졌다. 단기외채 증가는 1년 내에 갚아야 할 외화 빚이 많아졌음을 의미하므로 향후 외화수요가 늘어나면서 환율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외은지점은 주로 금융상품 투자 등 우리나라에서의 영업을 위해 본국으로부터 외화를 들여오는데, 본국 사정 악화시에는 즉각 외화를 빼 내보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외환위기때 이러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남유럽 재정위기와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 등으로 외화자금이 급격하게 유출되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만에 하나라도 '부루마블' 게임의 경우처럼 외채 상환을 위해 자산을 급히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산가격의 폭락은 물론 대외신인도의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외채가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최근 외화 차입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방법에서부터 직접적인 양적규제 방법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별로 득실을 면밀히 따져보고 도입해 외은지점 중심의 단기외채 증가가 금융시장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