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에도 '사서삼경(四書三經)'이 있다. IFRS의 중요한 7개 기준서를 말한다. 첫째,'금융상품'이다. 금융상품 기준서는 약 500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분량으로 전체 IFRS에서 가장 어려운 기준이기도 하다. IFRS가 공정가치 중심의 회계기준이라고 볼 때 금융상품 기준서는 공정가치 회계의 첨병에 해당한다. 둘째,'사업결합'이다. 사업결합의 핵심은 피매수자의 식별 가능한 순자산의 공정가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또한 매수대가의 공정가치 측정도 중요한 이슈이다.

셋째,'자산손상'이다. 자산손상은 자산의 장부금액보다 회수가능액이 미달할 때 이를 손상차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회수가능액 산정시 고도의 경제학적 · 재무관리적 · 통계적 지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넷째,'법인세 회계'다. 법인세 회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계뿐만 아니라 세무지식까지 겸비해야 한다.

다섯째,'주식기준보상'이다. 주식기준보상의 가장 대표적 예인 스톡옵션 회계처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옵션가격결정모형을 숙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프레드 시트(spread sheet) 활용능력까지 요구된다. 여섯째,'종업원 급여'다. 종업원 급여 중 확정급여채무 평가는 보험수리적 평가방법을 이해해야 하며,이는 대단히 복잡한 회계처리를 요구한다. 일곱째,'K-IFRS 최초채택'이다. 이는 IFRS와 과거 회계기준을 모두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IFRS의 '종합예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 강력한 영향

'IFRS 사서삼경'을 언급한 이유는 이런 기준서들이 공정가치에 대한 강조라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가치는 투자자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다. 특히 투자자들이 공개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자본시장이라고 볼 때,IFRS가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IFRS에 대한 지식이 높지 않은 개인 투자자를 대신해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예측을 함으로써 기업가치 및 주식가치에 대한 예측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예측의 시발점이 되는 회계분석 및 재무제표 분석시에 IFRS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면 잘못된 의사결정이 나오게 돼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어떤 회사가 'K-IFRS 1016'에 따라 유형자산 재평가를 실시했다고 가정하자.재평가 결과 유형자산 가치가 상승했고 그 결과 재평가잉여금(자본)이 증가해 부채비율(부채/자본)이 낮아졌다. 당신이 애널리스트라면 이 회사의 부채비율이 낮아졌다는 이유만으로 투자가치가 높다고 전망할 것인가? 그런 단순한 분석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된 애널리스트라면 이런 분석 이전에 이 회사가 왜 유형자산 재평가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만약 이 회사가 은행과 약정을 체결할 때 일정 부채비율 이하로 유지하도록 요구받아서 어쩔 수 없이 재평가를 한 것이라면 회사의 본질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란 거의 없는 것이다. 재평가를 함으로써 상당한 평가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IFRS는 자본시장의 효율적 운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IFRS 전문가이지만 IFRS 맹신론자는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IFRS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애널리스트에게는 더욱 그렇게 주장한다. IFRS는 어디까지나 기준일 뿐이다. 애널리스트의 경우 자신의 평가 모형이나 접근방법에 IFRS가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IFRS에 종속돼 평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IFRS의 맹점을 파악해 자신의 평가모형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기업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필자가 국내 IFRS 조기 적용 기업의 2010년 1분기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기업 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분기보고서는 연차재무제표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의 질과 양에서 근본적으로 부족한 면은 있다고 인정하지만,IFRS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공시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때 특히 차이가 컸다. 그 중 충실한 주식공시를 한 기업은 아무래도 필자의 눈에는 예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업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사업의 성과가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항상 좋은 사업성과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시련이 있듯 기업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초지일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자신의 재무상태에 대한 충실한 공시가 중요하다. 충실한 공시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시켜 기업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발적인 충실한 공시를 기대하기 어려우면 공시의 품질에 대한 순위를 공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윤리경영과의 접목

경영자의 철학을 꾸밈없이 보여줘야 하는 것이 회계가 필요한 이유다. 정직한 회계보고는 윤리경영의 시발점이다. 엔론이나 월드콤과 같은 회계부정은 가장 비윤리적인 사례다. 그러나 숫자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회계는 일정한 원칙에 따라 회계기준에서 요구하는 공시사항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IFRS의 진가가 드러난다. IFRS가 요구하는 주식공시사항은 상당히 많으며 매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자산과 부채의 장부금액은 불확실한 미래 사건이 보고기간 말의 자산과 부채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해 결정한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가정과 보고기간 말의 추정 불확실성에 대한 기타 주요 원천에 대한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가정과 추정 불확실성에 대한 기타 원천은 경영진에게 가장 어렵고 주관적이고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여기서 경영자는 공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윤리경영의 핵심이다.

●투자 패러다임 전환 기회

필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에 대해 이화여대 서정원 교수의 연구 논문을 많이 인용한다. 개인적으로 서 교수의 논문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했다고 본다.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의 가치가 선진국 기업들과 비교할 때 낮은 현상이다. 이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국가의 특성을 선정해 이들이 각국 평균 주가배수와 유의적인 관계를 나타내는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각국 평균 주가배수는 각 주식시장의 평균 매매회전율과 유의적인 상관관계를 나타내며,매매회전율이 높은 시장일수록 평균 주가배수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단기투자성향이 강한 시장일수록 기업가치가 낮을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한국 시장의 매매회전율은 분석 대상 17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이런 분석 결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한국 주식시장의 강한 단기투자성향에 원인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결국 장기투자문화 정착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방송의 경쟁적인 기술적 시장 분석 등에 휘둘리는 투자자들이 많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단기매매성향을 부추기는 요인들이다.

누가 뭐라 해도 재무제표 정보 분석이야말로 장기투자문화의 시발점이다. IFRS가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친다면 IFRS에 대한 이해도 장기투자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IFRS에 대한 교육 시급

많은 이들이 바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IFRS의 핵심적인 부문만 골라 '쪽집게식'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솔직히 그런 강의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생각해 보라.2500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을 어떻게 몇 시간 만에 강의 할 수 있는가? 설령 그와 같이 한들 업무에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영국회계사협회에서 권고하는 IFRS 교육 시간은 기본(basic) 수준이 70시간이고,고급(advance) 수준이 100~140시간이다. 영국회계사협회가 주관하는 IFRS 기출문제를 검토해본 적이 있는데 그 수준이 대단했다. IFRS가 요구하는 원칙 중심의 사고를 테스트하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의 회계학 교육도 이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기존의 기록 위주 교육에서 인식,측정 및 주석의 이해 교육으로 탈바꿈할 때다. 실제로 기업에서 일하는 경영자와 실무자를 위한 재무제표 작성자 교육 역시 시급하다.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연구위원